[대구·경북 디아스포라] 카자흐스탄과 키로기스스탄의 고려인(5부) ② 허가이 블라디슬라브 구코비치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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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7   |  발행일 2018-07-17 제6면   |  수정 2022-05-18 17:17
의병장 왕산 허위의 친손자 “지질학자로 금광도 발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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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의병대장 왕산 허위 선생의 친손자 허가이 블라디슬라브 구코비치가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시 교외 자택 정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허가이 블라디미르 구코비치는 러시아 출신 여성(루드밀라)과 결혼했다. 결혼식 때 찍은 사진(오른쪽 위).
◆장군의 손자

“우즈베키스탄 아쿠르간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어릴 때 어른들께 물을 따르다 넘어졌는데, 누가 ‘장군이 넘어졌다’면서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너도 장군이 될 거야’라고 한 기억이 있어요.”

허가이 블라디슬라브 구코비치씨(67)는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구한말 대표적인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의 친손자다.

왕산은 4형제(허학·허영·허준·허국)를 뒀는데, 블라디슬라브는 허국의 5남4녀 중 막내다.

큰아버지 허학은 의병장 간 연락과 무기조달을 담당하며 부친의 의병활동을 돕다 일제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뒤 만주로 가 독립운동을 했다. 옛소련에서 살다 허국과 함께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됐으나 1944년 실종됐다. 당시 허영과 허준도 일본군 수배대상이었다.

공부 독려하는 아버지 밑서 자라
5남4녀 중 8명이 대학에 진학

오데사대학 지질학과에서 공부
지질자원연구원으로 13년 근무
생활고로 퇴직…수박농사 지어

2006년 특별귀화 한국에 왔지만
건강 악화된 러시아 출신 아내
한국에 살기를 원치 않아 복귀


“큰아버지(허학)의 딸 로자 누님이 서울에서 살죠. 작은아버지(허영)는 중국에서 돌아가시고, 자녀가 대구와 미국에서 살아요. 독립운동을 했던 허준 숙부는 광복 후 서울로 갔다 좌익으로 몰려 북한에서 1956년에 사망했어요. 세 아들(광배·웅배·환배)이 있는데, 웅배는 97년 돌아가셨어요(웅배는 허진 또는 임은으로도 불린다. 6·25전쟁 때 인민군 선무공작대장으로 참전했다. 52년 모스크바로 유학, 모스크바대 교수가 됐으며 러시아고려인협회장과 고려일보 회장을 지냈다. 흐루시초프시절 반(反)스탈린, 반(反)김일성 운동을 벌였으며 후일 한국과 러시아가 국교를 수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웅배 딸이 모스크바에 살아요. 환배는 딸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사는데, 사위(최 블라디미르)가 큰 부자예요.”

그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묻자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버지는 연해주에서 한글신문 기자와 교사를 했어요. 레닌기치에 시를 써 당선돼 우리들에게 자전거도 사줬죠. 중앙아시아에 와서 농사를 지으며 시도 썼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분질(1년 이상 타지로 떠나 농사짓고 수확해 돌아오는 것)을 하다 63년에 키르기스스탄으로 와 다시 고분질을 계속했죠. 자녀들이 학교로 진학하면서 떨어져 살았어요. 어릴 때 집에선 항상 고려말을 써서 나도 러시아말을 할 줄 몰랐죠. 71년에 돌아가셨어요.”

그의 집안은 대대로 ‘왕산가’라는 자부심이 높았다.

“양기울시(市)로 이사가 그곳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아버지께서 돈을 버는 것보다 ‘공부를 잘 해야 한다’고 늘 말씀했어요. 심지어 공부를 못 하면 매를 들기도 했죠. 그래서 그런지 형제자매들이 다들 대학 나와 박사학위 받고 똑똑했어요. 미론형만 공부를 안했죠(웃음). 미론형은 철공소에서 기술자로 일했는데, 나중엔 키르기스스탄에서 손꼽힐 정도의 기술자가 됐죠. 우리는 우즈벡어를 썼죠. 난 키도 작고 까무잡잡했어요. 학교에서 너무 어리다고 안 받아줬죠. 그래도 8학년 때까지 1등을 했어요. 싸움을 걸어오면 잘 싸웠죠. 장군의 손자답게(웃음).”

어머니의 이름은 ‘장 비에이라’. 아버지와 재혼해 형 게오르기와 자신을 낳았다. 위로 3남4녀가 이복 형제자매인데, 나이 차가 많이 났다.

“가장 큰 형이 허 일리아인데 16살 때 얼어죽었어요. 다음이 허 알렉산드리아, 허 조야(사망), 허 클라라, 허 브로코호비치, 허 알렌시아, 허 미론, 허 게오르기 다음이 저예요. 브로코호비치는 우즈벡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러시아에서 살아요. 알렉산드리아는 연해주로 시집가고, 클라라는 교사를 하다 러시아에서 살죠. 손자가 미국에 있어요. 미론은 나중에 타슈켄트의 국가기관에서 일하다 모스크바에서 병사했지요.”

바로 윗 형 허 게오르기는 모스크바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옛 소련의 공기업에서 일하다 키르기스스탄이 독립되면서 고분질을 했다.

◆지질학자로서의 삶

1968년 블라디미르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와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초·중·고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이듬해 우크라이나 오데사대학 지질학과에 입학했다.

“지질에 흥미가 있어 지질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지질학은 학문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는 러시아 속담이 있지요. 특히 심해에서 가스나 석유 같은 것을 찾는 해양 지질에 관심이 많았어요.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여 집에도 거의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돈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맘껏 하고 싶었다. 성적도 늘 상위권이었다. 지금도 대학시절을 인생의 황금기라고 여기고 있다.

“우리 과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이었어요. 그럼에도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하니 교수들이 많이 놀라더군요. 74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키르기스스탄의 지질학연구소에서 일했어요.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지질지도를 만들고 운쿠다쉬시에선 금광도 발견했죠. 키르기스스탄 남부 잘랄아바드에서 퇴직했어요.”

그는 지질자원연구원으로 13년간 근무했다. 하지만 키르기스스탄이 옛소련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뒤엔 경제난으로 아이들 양육비와 교육비를 감당하기 버거워 91년 연구소를 그만뒀다. 이후 2년간 카자흐스탄 아크토베와 사라토브 등지에서 수박농사를 지었다. 그러다 한국의 모 다큐멘터리제작사와 인연이 돼 키르기스스탄에 진출한 삼성엔지니어링의 한국어 통역사로 일했다.

◆한국으로 특별귀화…그러나 다시 키르기스스탄으로

“2006년에 독립유공자 후손 자격으로 형(게오르기)과 함께 한국에 특별귀화했어요. 한국에서 살 때 구미에 있는 할아버지(왕산)기념관에도 가보고 조상들이 묻혀있는 산소에도 가봤지요. 경기도 안산의 한 의료기기업체에서 2년간 일했는데, 아내가 건강이 나빠져 한국에서 살길 원하지 않았어요(그의 아내는 러시아출신이다. 같은 나이로 지질학연구소 동료로 일하다 연애 끝에 결혼했다). 나이가 들어 한국에 정착하기 힘들었어요. 또 정착금을 받아도 아파트를 구입할 여력이 안 될뿐더러 전세금 내기도 빠듯했죠. 인천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한국인이란 자긍심이 있었어요. 상황이 됐으면 한국에 살았을 텐데…. 한국에 있을 땐 소망교회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는 다시 키르기스스탄으로 돌아와 한 한국인의 도움으로 1.5t트럭을 헐값에 구입한 뒤 휴대폰을 이용해 이삿짐 운송업을 했다. 돈벌이도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은 은퇴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업을 하는 둘째아들(허 세르게이)이 생활비를 대준다. 아들이 자동차도 사줬다.

“아들이 둘인데 큰아들(허 알렉산드라·40)은 캐나다에서 살아요. 여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캐나다에서 통역 일을 하고 있어요. 제 연금이 한달에 80달러, 아내가 150달러를 받습니다. 한국의 기초노령연금이 인상됐다는데, 저도 해당이 되는지 모르겠어요(웃음). ”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왕산가의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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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 허위 존영
구한말 13도창의군 의병총대장으로 한양 진공작전을 펼쳤던 왕산(旺山) 허위 선생(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은 구미시 임은동 출신이다. 왕산가(旺山家)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명문가 중 하나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물만 10여 명에 이른다.

왕산의 백형인 허훈(건국훈장 애국장)은 유학자로 논 3천마지기를 팔아 독립군자금을 지원하고, 진보지역 의병장으로 참전했다. 맏손자인 허종은 만주 서로군정서의 독립군자금 모집 활동을 했다. 계형인 허겸(건국훈장 애족장)은 경기도에서 의병을 조직한 뒤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 단체인 부민단 초대 단장을 지내다 만주에서 별세했다. 왕산의 사촌동생인 허형과 허필 또한 만주로 가 독립운동을 했다. 허필의 아들 허형식은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으로 김일성, 김책, 최현, 최용건 등과 항일무장투쟁을 하다 전사했다. 중국 선양9·18역사박물관에 그의 행적이 전시돼 있다. 또 허형의 아들 허민, 허발, 허규도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딸 허길의 아들이 저항시인 이육사다. 왕산의 직계 제자로는 대한광복회 총사령인 박상진 열사가 있다.

※이 기사는 경북도 해외동포네트워크사업인 ‘세계시민으로 사는 대구·경북인 2018-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 일환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공동기획: 인문사회연구소 Fride GyeongB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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