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국회 눈먼 돈, 지방의회 쌈짓돈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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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6   |  발행일 2018-07-16 제31면   |  수정 2018-07-16
[월요칼럼] 국회 눈먼 돈, 지방의회 쌈짓돈
배재석 논설위원

“2008년 여당 원내대표를 할 때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했기 때문에 매달 국회 대책비로 나오는 4천만~5천만원을 전부 현금화해서 국회대책비로 쓰고 남은 돈은 집사람에게 생활비로 주곤 했다”(2015년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국회 환노위 상임위원장 시절 받았던 특수활동비를 자녀 유학비로 사용했다”(신계륜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순진한 탓인지 그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다. 국민의 피땀 어린 혈세를 눈먼 돈쯤으로 여기고 그렇게 흥청망청 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참여연대가 3년간의 소송 끝에 이겨 최근 폭로한 2011~2013년 국회 특활비 씀씀이를 보노라면 내가 이러려고 국회의원을 뽑았나 자괴감이 들 정도다. 이미 억대 연봉을 받는 데도 교섭단체 대표는 무슨 특수 활동을 했는지 매월 6천만원을 꼬박꼬박 받아갔고, 상임위원장들도 매달 600만원씩 챙겼다. 법사위원장은 여기에 추가로 매달 1천만원을 받아 여야 간사에게 100만원, 위원들에게 50만원씩 나눠줬다. 윤리특위위원장은 매달 600만원을 타갔지만 3년 동안 회의는 3개월에 한번 꼴로 열렸고, 이 기간 처리된 안건은 딱 1건이었다. 국정감사 기간에는 모든 의원이 100여만원씩 받았다. 이렇게 무소불위 국회권력 뒤에서 제2의 월급처럼 쓰인 돈이 3년간 총 240억원에 달한다. 영수증도 필요없고, 어디에 썼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니 그야말로 ‘깜깜이 예산’인 셈이다.

그렇다고 우리 국회가 세금을 펑펑 써도 좋을 만큼 제대로 밥값을 한 것도 아니다. 20대 국회 전반기 접수된 법률안 1만3천303건 중 처리된 법안 건수는 3천564건에 불과하다. 법안 처리율이 27%로 지난 19대 국회 전반기 32%에도 못 미친다. 법안 대표발의가 단 한건도 없는 의원이 32명이나 되고, 지난 1년간 본회에 재석률은 66.5%에 머물렀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년간 소관 상임위원회인 외교통일위원회 출석률이 0%였다. 이러니 국회의원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 세비를 반납하거나 최저임금을 적용하라는 청원이 빗발치는 것이다.

국회가 ‘세금도둑’이라는 오명을 벗고 생산적인 기관으로 거듭나려면 이참에 특활비를 확실하게 손질해야 한다. 기득권 유지를 위한 침묵의 카르텔을 과감히 깨고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번에도 개혁을 외면하고 어물쩍 미봉책으로 넘어가려 한다면 국민적 저항과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다. 국민의 정서에 맞추려면 개선 정도로는 부족하다. 아예 특활비를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의원외교와 국가안보 관련 등 꼭 필요한 경비는 정책개발비·특정업무경비 같은 국회의 공식 예산항목을 활용하고 영수증 처리를 하면 된다. 과거처럼 시간을 끌면 또 흐지부지 될 수 있다. 정기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속도를 내야 한다.

아까운 국민의 세금이 쌈짓돈처럼 쓰이기는 지방의회도 예외가 아니다. 광역·기초의회 의장·부의장·상임위원장은 많게는 연간 수 천 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집행하지만 감시의 눈길은 멀다. 사용내역도 의정활동과는 별 연관이 없는 밥값·술값, 선물 구입비 등이 대부분이다. 규정에 어긋나는 주말·공휴일 결제, 유흥업소 사용도 빈번하다. 대구지역 8개 기초의회의 경우 지난 한해 카드로 긁은 업무추진비는 3천493회, 4억4천여만 원에 이른다. 사정이 이런데도 17개 시·도 중 지자체가 지방의회 업무추진비를 감사하는 곳은 8곳뿐이고, 전국 기초의회 중 홈페이지에 업무추진비 내역을 공개하는 곳은 절반에 그친다.

이제 막 닻을 올린 제8대 지방의회는 특권·구태와 단절하고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 주역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개인 용돈처럼 제멋대로 쓰는 업무추진비는 감시·견제장치를 마련하고, 부당집행에 대해서는 처벌과 함께 환수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비리와 갑질은 꿈도 꾸지 말기를 바란다. 최소한 정의당이 선언한 5무(無)5유(有) 중 5무만이라도 실천한다면 한층 깨끗한 지방의회가 될 수 있다. 바로 △외유성 해외연수 △재량사업 등 선심성 예산편성 △인허가·지자체 발주공사 알선 등 이권개입 △취업청탁·인사개입 △의원직무와 연관된 영리활동은 안 하겠다는 것이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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