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속 썩는 보호수

  • 이하수
  • |
  • 입력 2018-07-14   |  발행일 2018-07-14 제23면   |  수정 2018-07-14

지난달 26일 수원시 영통구의 500여 년 된 보호수가 부러졌다. 높이 33.4m, 둘레 4.8m에 530년 이상 된 이 느티나무는 이날 내린 장맛비와 바람으로 여러 갈래로 찢기듯 부러졌다. 바람에 휩쓸려 한쪽으로 쓰러진 게 아니라 사방으로 갈라져 부러졌다. 나무 줄기의 중앙에서 폭탄이 터진 듯하다. 수고 33.4m에 줄기의 가슴 높이 둘레가 4.8m나 되면 웬만한 비바람도 견딜 만한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심하지 않은 바람에 무너진 것은 속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겉은 멀쩡한 듯 보였으나 속에서는 부패가 진행돼 줄기가 힘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진 것이다.

놀란 수원시는 관내에 있는 모든 보호수의 건강 상태를 검사하기로 했다. 여기에 아보톰이라는 기계가 동원된다. 아보톰은 충격파를 이용, 나무의 내부를 파악할 수 있는 비파괴 검사 장비다. 매질(媒質)마다 파동의 전달 속도와 강도가 다르다는 점을 이용하여 건강한 부위와 죽은 부위, 비어 있는 곳 등을 구분한다. 줄기 둘레에 여러 개의 센서를 부착한 후 나무에 충격을 주면 감지된 파동의 질에 따라 모니터에 색깔로 표시된다. 사실 아보톰은 이 장비의 이름이 아닌 상표명이다. 이외에 피쿠스 등 여러 상품이 도입돼 사용되고 있다.

나무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데 널리 쓰이는 장비로 샤이고미터라는 기계도 있다. 세계적인 식물학 권위자 샤이고 박사가 고안한 것으로 전기저항을 이용하여 형성층의 활력도를 측정한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의 업체가 이 샤이고미터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켜 개발한 측정기가 인기다.

수원시가 보호수를 모두 검사하기로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 검사가 보호수 건강 악화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오래된 나무, 보호수가 활력을 잃는 것은 시멘트, 보도블록으로 덮여 있거나 돌, 축대 등으로 복토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산림 관련 공무원이나 조경 관계자들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다만 그것을 걷어낼 용기가 없을 뿐이다.

상주시 170그루를 비롯해 경북도내에도 2천여 그루의 보호수가 있다. 이들 중 열에 여덟아홉은 뿌리가 시멘트나 아스콘, 보도블록에 덮여 있다. 그들의 속은 어떻게 썩어 가고 있을까?

이하수 중부본부 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