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가고 싶지 않다, 그 섬에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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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3   |  발행일 2018-07-13 제23면   |  수정 2018-07-13
[조정래 칼럼] 가고 싶지 않다, 그 섬에

제주도. 지금껏 돌아올 때면 항상 아쉬움을 남기곤 했던, 그래서 하루 빨리 다시 가고 싶었던 그 섬이 어느 날 갑자기 싫어졌다. 이로써 나는 국내의 몇 안되는 해외(海外), 벼르고 별러 큰 맘 먹어 겨우 한번씩 가곤 했던 최고의 휴양지를 잃어버렸다. 제주도에 대한 싫증이 젊은 날의 흥취를 잃은 탓도 있지만, 분명한 건 기억과 현실 모두에서 과거의 제주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라산 등반은 모를까, 다시는 제주도에 안간다고. 이렇게 일행들에게 푸념을 하고 다짐을 하면서 나는 그 섬에 조의(弔意)를 표했다.

제주도가 변했다. 인심이 예전 같지 않으면 풍광이라도 옛날 그대로 변함이 없으면 좋으련만, 차와 사람들이 빚어내는 번다함은 야단스럽고 부산하기 짝이 없다. 시내는 차량 체증으로 짜증을 내뿜고, 요지요지에 들어선 건물들은 눈을 어지럽게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넌더리보다 더 질리게 하는 건 사나운 인심과 바가지 상혼이다. 그중 대표적인 게 제주공항 인근의 한 렌터카 업체의 일방적 횡포. 렌트한 승합차 반납 시간을 조금 넘겼다고 하루치 임대료를 물리는 건 이해할 만하다고 치자. 업체 직원들은 그다음 가상의 임차인이 차를 사용하지 못해서 발생한 위약금(하루치 임대료)까지 요구했다. 거기에 앞 범퍼에 약간 긁힌 자국까지 문제삼아 그 교체비용까지 청구하니 기가 막힐 수밖에.

제 시간을 지키지 못한 잘못은 이용자 책임이 틀림없고, 응분의 보상을 할 용의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여야지, 비행기 시간 바쁜 사람 약점을 잡아도 유분수지, 점잖은 체면에 젊은이들 하고 드잡이질도 할 수 없는 처지, 억울하지만 비행기 놓쳐 더 밑질까봐 계산부터 하고 본다. 차량 수리비는 정비업체에 직접 지급하기로 하고. 임기응변도 약하고 유약한 이용자였더라면 고스란히 앞 범퍼 교체비 32만원도 변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리 찍히고 저리 긁힌 곰보투성이는 수리할 새도 없이 이용자들의 수리비만 꿀꺽 삼킨 돈 덩어리 상흔임이 틀림없을 터. 이처럼 사소하지만 너무나 불합리하고 불쾌한 기억은 쉽사리 잊히기는커녕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확산된다.

제주도는 여전히 신혼여행 일번지고 대한민국 대표 여행지다. 서민들에겐 꿈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국적인 휴식처이고 휴양지였던 그 섬이 거듭된 개발로 원형을 잃어 뭍의 번잡하기만 한 도시와 다름없다면 희소성을 상실한 건 아닐까. 갈수록 향상되는 먹거리와 서비스 수준은 다시 찾고 싶은 관광지로 각인되기 위해서 갖춰야 할 필수요건인데, 과연 제주도는 그러한가 반문해 볼 시점이 아닌가 싶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원희룡 제주도지사에게 주문하고 싶다. 도 전체 요식업소와 서비스 업체의 경쟁력 리모델링이 절실하다고.

장마 끝에 시작되는 본격 휴가철, 고향 농·산·어촌에서 휴가보내기 운동이 중년들의 로망과 구미를 당기게 한다. 하지만 젊은이들과 일부 중년 아줌마들의 여행 트렌드는 이런 국내 여행 캠페인도 무색하게 해외를 선호한다. 최근 들어 일본이 부쩍 음식투어로 각광을 받고 있고, 동남아 유명 휴양지도 신혼여행뿐만 아니라 중·노년층의 추억 여행지로 떠오른지 오래다. 이러한 해외 여행 붐은 무엇보다 경비 측면에서 비싸지 않거나 오히려 값싸기 때문이다. 비싼 여행경비는 비단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서·남해안 관광지 대부분이 그러하다. 바가지는 국내 여행객을 해외로 내쫓는 주범이다. 중국인 관광객은 다시 돌아왔지만 여행수지 적자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으니….

관광지와 먹거리 이름값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당장의 실적에 급급해 저가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나서는 것은 관광 입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의 유명한 음식점이 누대에 걸쳐 장인정신을 발휘해 터득한 맛으로 얻은 명성이란 사실을 안다면, 우리도 자손 대에 최고의 관광 전성기를 누릴 수 있도록 차근차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구축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세계 최고의 명승지 한국에, 제주도에 가고 싶다는 소리가 나오려면 다시 한 세대의 회생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게 나만의 전망이나 기우이길 빌며 두 손을 모아 본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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