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개헌, 국회, 경험칙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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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4   |  발행일 2018-05-24 제31면   |  수정 2018-05-24

경험칙(經驗則)은 ‘empirical rule’로 영역된다. 경험의 법칙 또는 실증적 법칙의 줄임말이란 얘기다. 과학·공업 용어로 쓰일 땐 실험이나 관찰·측정에서 얻어지는 법칙을 말한다. 경험칙은 경험 등에 의해 귀납적으로 얻어지며, 일상생활이나 수학·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물현상의 일반적 성상(性狀) 및 인과관계에 관한 지식 또는 법칙이다. 밤이 되면 사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든가, 술에 취하면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등이 경험칙에 해당한다. 주로 주식시장에서 통용되는 학습효과도 경험에 의해 터득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경험칙이라 할 수 있다. 정신적 외상을 뜻하는 트라우마 역시 항공기 사고 같은 충격적인 경험에서 비롯되는 만큼 경험칙과 맥이 닿아 있는 셈이다.

개헌을 경험칙의 관점에서 판단해 보면 어떨까. 역대 정부를 통해 만들어진 경험칙은 대통령 임기 후반기에선 개헌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야당의 호응을 얻지 못해 동력을 잃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서 국면 전환용으로 개헌 카드를 빼들었지만 최순실 태블릿PC 보도에 가려지면서 금방 사장됐다.

‘방탄국회’로 호된 비판을 받고 있는 선량(選良)들에게도 경험칙은 유효하다. 경험칙은 야누스 같은 국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노정한다. 2016년 총선 때만 해도 온갖 특권을 내려놓겠다며 호들갑을 떨더니만 지금까지 달라진 건 없다.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지 않았고 세비를 깎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보좌진을 늘리는 짬짜미엔 신공을 발휘했다. 개점휴업과 파업·태업을 반복하는 못된 버릇도 여전하다.

개헌은 국회가 주도한다. 대통령이 발의는 할 수 있지만 국회 동의 없이 개헌은 불가능하다. 한데 경험칙은 정권 후반기 개헌과 국회의 역할에 다 부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연내 개헌이 이루어질까. 연내 개헌 성사 여부를 두고 베팅을 한다면 필자는 안 된다는 쪽에 올인하겠다.

미국은 1788년 헌법을 제정하면서 미치광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도록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정교하게 반영했다.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헌법은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 천금 같은 개헌 골든타임을 흘려보내야 하는 현실이 자못 비감하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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