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말의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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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4   |  발행일 2018-05-24 제30면   |  수정 2018-05-24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이자
들을 필요 없는 말이지만
이 ‘말의 퍼포먼스’ 도중
사적 영역이든 창작이든
깊은 소통의 언어를 습득
[여성칼럼] 말의 퍼포먼스
남인숙 (대구예술발전소 소장)

얼마 전 어머니는 집을 나서는 나에게 옷을 바꾸어 입으라고 하셨다. 비일비재한 일이긴 하지만 이날은 유독 여러 가지 강력한 단어를 동원하며 갈아입으라고 요구하는데, 한마디로 당신이 제안하는 스타일로 바꾸라는 말씀이었다. 어머니의 주장이 너무 확신에 차서 그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때로 경이롭다.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주장이고 저런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하기도 하다. 아무튼 그날은 약속시간에 늦을 지경인데도 강력한 주장을 멈추지 않으셨다. 그러니만큼 나 역시 그럴 수 없다고 완강하게 저항했고 이를 빌미로 이래저래 쌓아둔 평소의 불만을 살짝 해소했다. 서로 합의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고,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노하우도 충분하다.

어머니에게 딸은 여러 가지 기능과 정서를 갖는 존재다. 딸에게 어머니는 평가할 수 없는 무한한 대상이므로 쌍방이 아닌 일방의 관계로서 사랑의 일방통행로라 할 수 있다. 소소하고 사적(私的)인 나의 사건,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사적이어서 공유할 수 없는 말이 있지만 또 그 말 때문에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어머니와 나는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주의주장(主義主張)을 펼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로 들으라고 하는 말은 아닌 것이다. 선택하든지 말든지를 결정하는 혼잣말 같은 주장이 대부분이다. 이 경우 들으려고도 들으라고도 하지 않는 말을 쏟아 놓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대상, 딱- 그 대상’이 없다면 이뤄질 수 없는 진귀한 말의 퍼포먼스가 일어난다. 말의 퍼포먼스는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이자 누구도 들을 필요가 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 퍼포먼스 도중에 우리는 아주 깊은 사랑의 언어를 습득해간다. 더러 상처는 크지만 말이다. 이런 식으로 수집되는 사랑의 사전(事典)에는 대부분 고통과 상처의 흔적들이 가득하고 사전에 기입된 단어의 양이란 사실상 평이하고 미미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 단어들은 누구에게나 그 울림을 전달하는 보편적인 언어가 된다.

그런데 이런 식의 말의 퍼포먼스는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다. 창작과 관련된 예술 분야는 프로젝트 형태의 일이 많다. 규칙적인 출퇴근은 아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기획하고 실현하는 방식으로 사안에 따라 일을 조직하고 수행하는 일인데, 예술 관련 기획일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 일은 공적인 일이자 객관적인 언어를 사용함에도 어머니와 치르는 퍼포먼스 못지않게 무수한 전달의 실패를 맛보아야만 무엇인가 성사되는 또다른 말의 퍼포먼스라 할 수 있다. 이를 정리 정돈하는 분야를 예술행정이나 예술경영으로 부르기도 한다.

예술을 행정이나 경영이라는 도구를 통해 소통하는 것은 사랑의 사전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전이 동원되어야 하는 퍼포먼스를 수행한 다음에야 드디어 무엇인가 성사된다고나 할까. 무수히 많으면서도 반복적인 진행 체계의 정비를 통해야만 사랑의 언어와 비슷한 것을 얻지 않을까 싶다. 일의 목표에 대한 이해도 서로 다르고 나아가 일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의 정도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일할 때는 일의 목표를 중심에 놓고 이와 관련된 의사소통의 방식을 체계화하는 것이 합리적일 뿐 아니라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긴장을 놓지 않으면서 늘 고민해야 한다. 내심으로 ‘알겠지’하고 믿는 순간이 오히려 완전히 다른 생각과 다른 이해와 결론을 갖고 자리를 뜨는 순간일 수 있고, 이 순간이 일이 망가지는 결정적 순간이 될 수 있다. 사적인 이해에 갇히지 않도록 하면서 해당 담당자가 자리를 비워도 일이 진행되는 방식이어야 일처리의 투명도와 효율성이 높아지고 오해의 소지도 줄일 수 있다. 어쩌면 이 과정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일의 전부일 수 있다. 물론 모든 일은 결과의 완성도로 평가되어야 하는 냉혹함과 엄정함이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남인숙 (대구예술발전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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