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쓰던것 있어 보이네” 컵도 빈티지

  • 최미애
  • |
  • 입력 2018-05-24 07:53  |  수정 2018-05-24 09:05  |  발행일 2018-05-24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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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만 새롭게 느껴진다. ‘빈티지’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잡음마저 귀를 즐겁게 하는 LP 음반, 촌스럽지만 이제는 멋스럽게 느껴지는 일명 ‘청청패션’(청바지에 청자켓이나 청남방을 입는 것) 등이 대표적인 빈티지의 예다. 최근에는 ‘빈티지컵’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SNS에서 ‘빈티지컵’을 검색하면 3만여 개의 관련 사진이 쏟아져나온다. 촌스러운 색깔과 로고로 장식됐는데 속된 말로 ‘뭔가 있어’ 보인다. 빈티지컵은 이제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갖고 싶은 것’이 됐다.

서울우유·델몬트·썬키스트 등
대부분 8090 음료회사 홍보컵
마니아층 형성…온라인서 거래
대구 중구 ‘롤러 커피’ 등
콘셉트형 카페에서 사용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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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의 카페 ‘롤러 커피’에서 사용하는 비락우유컵. 컵 표면의 무늬와 컵에 담긴 카페라떼의 색이 묘하게 어울린다.

◆창고에 처박혀 있던 컵의 재발견

“시골 할머니댁 찬장에 있더라고요. 보물 찾은 기분이었어요.” 빈티지컵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볼 수 있다. 발견 장소마저 ‘빈티지’하다. 시골 할머니집,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물품창고처럼 우리가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 곳에서 발견된다. 최근 빈티지컵이 인기를 끌면서 혹시나 해서 창고를 정리하다 포장을 채 뜯지 않은 컵들을 발견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이 컵들의 표면에는 서울우유, 델몬트, 썬키스트, 오란씨 등 음료회사의 이름과 상표가 적혀 있다. 왜 이런 이름들이 찍혀져 있을까. 이는 빈티지컵 대부분이 1980~90년대 각 음료회사에서 홍보용으로 고객들에게 제공했던 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일부에서는 빈티지컵을 한두 개가 아닌 10여 개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정확한 이유는 파악되지 않지만 우유 배달 대리점 주인과 친분이 있거나 자주 우유를 배달받으면서 얻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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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빙그레에서 최근 홍보용으로 제작한 빈티지컵. 오른쪽은 오리온이 패션편집숍 브랜드 비이커와 함께 제작한 빈티지잔. <홈페이지 화면 캡처>

◆온라인에서도 판매

마니아층이 생겨나면서 빈티지컵은 온라인에서도 거래되고 있다. 원래 비매품이었기 때문에 빈티지컵의 정확한 가격은 설정돼 있지 않다. 컵의 상태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판매자가 ‘부르는 게 값’이다. 가격대는 개당 1만~2만원 정도다. 흔하게 볼 수 없는 컵의 경우 4만~5만원대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특히 88올림픽 기념 ‘호돌이컵’은 희귀품으로 꼽혀 10만원대에 판매되는 것들도 있다.

같은 회사에서 나온 컵이더라도 그려진 그림이나 컵의 형태가 각양각색이어서 빈티지컵 마니아들의 구매욕을 높이고 있다. 서울우유컵만 해도 투명한 유리잔으로 제작된 컵도 있지만, 불투명한 흰색 컵에 서울우유의 붉은색 로고가 찍힌 것도 있다. 식품업계에서는 최근 마케팅이나 홍보수단으로 빈티지컵을 선보이기도 했다. 빙그레는 지난달 회사 SNS 계정을 통해 빈티지컵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이 이벤트를 위해 빙그레는 1990년대 로고를 살려 빈티지컵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촌스러운 색, 큼직한 로고가 특징인 컵을 비매품으로 제작했다. 빈티지컵 증정 이벤트 글이 올라오면서 900여 개의 댓글이 달렸고, 이벤트 후에는 구매 방법을 문의하는 글도 상당수 올라왔다. 오리온은 패션 편집숍 브랜드 비이커와 함께 초코파이 그림이 그려진 빈티지잔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했다.

◆카페에서도 빈티지컵 사용

몇 년 전부터 이미 빈티지컵에 커피를 담아내는 카페도 생겨나고 있다. 대구에도 젊은 층이 자주 찾는 카페를 중심으로 빈티지잔을 사용하는 곳이 일부 있다. 과거에 홍보용으로 나온 컵이거나 캐릭터를 이용한 빈티지컵이다. 대구 중구 남산동 인쇄골목에 위치한 ‘롤러 커피’도 그중 하나다. 직접 로스팅한 커피 원두로 아메리카노·카페라테와 같은 기본 커피 메뉴를 판매하는 작은 카페다. ‘가장 느리게 시간을 거스르는 빈티지’라는 카페의 콘셉트에 맞게 비락우유컵을 사용해 커피를 제공하고 있다. 비락우유 로고와 함께 올록볼록한 바닥, 하얀색과 하늘색이 섞인 산 형태의 그림이 카페에서 사용하는 비락우유컵의 특징이다.

롤러커피의 백종환 대표는 어머니의 찬장에서 이 컵들을 발견했다. 어머니가 한 번 구매한 물건을 오랫동안 사용하다보니 백 대표도 자연스럽게 이런 물건들을 집에서 사용하게 됐다. 지난해 카페 문을 열면서 이 컵들을 카페로 가져왔다. 비락우유 컵의 디자인과 커피가 이 컵에 담기면서 갖게 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사용하고 있다. 카페를 방문했다가 이 컵을 보고 집에서 갖고 있던 비락우유컵을 카페에 가져다 준 손님도 있었다고 했다. 백 대표는 “오랫동안 물건을 사용하면서 전해오는 그 물건에 얽힌 이야기도 좋아하고, 그런 물건을 쓰게 되면 삶의 태도도 바뀌는 것 같다”며 “나중에는 장인 정신으로 유리컵을 만드는 업체를 찾아 롤러커피만의 커피잔을 만들어 사용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빈티지컵처럼 오래 쓰이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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