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예술인의 책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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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2 07:43  |  수정 2018-05-22 07:43  |  발행일 2018-05-22 제17면
손혜영 <한국무용가>

그 지역의 음식은 그 지역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전라도 음식은 젓갈이 많이 들어가서 음식의 맛이 진하다. 경상도는 투박하지만 구수하다. 서울경기는 깔끔하고 단백하다.

춤과 악도 마찬가지다. 현재 전통춤은 전라도에서 파생된 이매방류와 서울경기의 성격을 띤 한영숙류가 대표적인데, 이매방류 살풀이춤만 봐도 젓갈이 듬뿍 들어가 아주 맛깔스럽고 음식맛처럼 춤의 맛이 진하고 표현도 그러하다. 한영숙류는 단백한 백김치 또는 오래 우려낸 사골국 같은 춤이다. 오래 끓이고 우려내야 그 맛이 진하게 나오며 특별한 맛은 없지만 상 위에 없으면 안되는 백김치 같이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의 춤이 바로 한영숙류 전통춤이다.

수업시간에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늘 음식과 비교하며 설명한다. 수업을 시작할 때 보통 선생님들은 “준비”라고 명령을 내리고 제자들은 무용실에 각자의 위치에 침묵하면서 준비 자세를 취한다. 어떤 생각과 마음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춤은 달라진다. 음식을 만들기 전에 그 메뉴에 필요한 재료들을 조리대에 준비하는 것과 같다. 태평무라는 작품을 추려면 먼저 필요한 재료가 ‘왕비의 마음’ ‘흥과 신명’ ‘절제된 마음’ ‘평화와 안녕’ ‘민첩함’ 등이다.

김치찌개에서 김치와 마늘이 빠진다면 그것은 김치찌개가 아니듯 태평무에서 빠지면 안되는 것들을 마음에 정돈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완성된 작품이 더 멋질 수 있으려면 꼭 필요한 레시피에서 개인의 특별한 표현이 필요할 것이다. 성격에 따라 청량고추를 더 넣거나 기름진 고기를 더 넣을 것이다. 춤과 맛은 주관적이어서 어떤 것이 더 훌륭하다고 답을 낼 수는 없지만 공통적인 답은 있다. 태평무는 태평무다워야 하고 김치찌개가 된장찌개맛이 나면 안된다는 것이다.

춤이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이 그대로 춤이 된다. 춤은 그 사람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릴 적에는 성격이 많이 급했는데 승무라는 오직 절제미를 강조하는 춤을 추고 난 다음부터 참을성이 길러졌고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춤을 잘 추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정리해야 한다.

작품에 따른 마음의 레시피도 늘 준비해야 한다. 슬픈 마음이 있더라도 태평무를 출 때에는 세상을 다 가진 풍성한 마음으로 바꿔야 춤이 된다. 나는 없고 나라를 기원하는 왕비가 되어야 한다. 시원한 성격은 춤도 시원하게 추고, 야무진 사람들은 춤도 섬세하게 추고, 비뚤어진 생각과 마음을 지닌 자는 춤도 꼬여 있다. 따뜻한 사람은 춤도 따뜻하고 냉정한 사람은 춤도 차다. 무대는 나를 통째로 보여주는 삶의 거울이다.

좋은 춤을 추기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예술인의 책임은 결국 삶에 있기 때문이다.손혜영 <한국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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