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DGB 파워게임에 대한 우려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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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1   |  발행일 2018-05-21 제30면   |  수정 2018-05-21
[하프타임] DGB 파워게임에 대한 우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선출할 때 고려했던 네 가지 기준이다. 수려한 풍모, 언변, 글솜씨 그리고 판단력을 일컫는다. 이 모두를 두루 겸비한 리더를 뽑을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하지만 창립 이래 가장 혹독한 시련기를 맞은 DGB대구은행 임직원 3천여명에겐 판단력을 제외한 나머지 기준들은 사족처럼 느껴질 것이다. 현재로선 새 리더가 조직의 문제점을 제대로 진단한 뒤 합리적 묘안을 내놓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나금융그룹에서 다양한 업무를 경험한 김태오 지주회장 내정자와 DGB금융그룹 내에서 ‘전략기획통’으로 통했던 김경룡 은행장 내정자가 이제 지휘봉을 이어받는다.

하지만 워낙 내상(內傷)이 깊어서일까.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채용비리·비자금 조성·수성구청 펀드손실보전·경산시금고 관련 의혹 등 악몽 같은 사건들로 인해 마음고생을 적잖이 한 DGB 임직원들은 최근 새 지주회장과 은행장 내정자의 결정에도 무덤덤한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은행장에 도전장을 낸 최종 후보자들까지 이런 악재에 연루됐었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장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주어진 선택지 속에서 그나마 CEO 리스크가 덜한 인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임직원들과 지역사회는 박인규 전 회장 겸 행장의 도덕성 문제와 책임감 결여에 크게 실망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임직원들은 수사당국을 들락거려야 했고, 각종 의혹을 놓고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 사이에서도 한동안 불신이 자리 잡았다.

그렇기에 직원들과 지역사회의 바람은 한 가지다. 당분간 조직 쇄신에만 열중하라는 것. 지주 창립 이래 7년간 겸직해 온 회장과 은행장 자리가 사실상 강제 분리된 상황을 절대 망각해선 안 된다는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다.

이 같은 기대감 속에서도 여태껏 ‘가지 않았던 길’을 가야 할 DGB호를 향한 우려감은 분명 존재한다. 회장 내정자는 왜관 출신이긴 하지만 DGB 내에선 지지기반이 없다. 반면 은행장 내정자는 사내 주류로 일컬어지는 대구상고·영남대 출신이다. 이 때문에 두 리더십이 ‘어색한 동거’에서 더 나아가 주도권을 갖기 위한 ‘파워게임’을 할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그룹 내부에선 한때 은행 임시주총을 먼저 열려 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은행장을 먼저 선임해 힘을 실어줘 새 지주회장을 길들이려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살 만한 대목이다. 구체제와의 차별성은 사라지고 ‘도긴개긴’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결과적으론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씁쓸한 뒷맛은 남는다.

이를 두고 ‘2014년 KB사태’를 순간 떠올린 이들도 있었다.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로 KB금융지주 회장과 KB국민은행장이 대립각을 세우다 검찰조사까지 이어진 사건이다. 실제로는 출신이 다른 회장과 은행장 간 ‘파워게임’ 성격이 짙었다.

DGB 사태를 진화할 특급 소방수를 자임한 두 CEO들에겐 한낱 기우(杞憂)로 그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DGB금융그룹의 새 리더들은 아직 사태가 완전히 종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수경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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