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정치인의 그럴듯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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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1 08:06  |  수정 2018-05-21 08:06  |  발행일 2018-05-21 제22면
[문화산책] 정치인의 그럴듯한 진실
최권준<대구가톨릭대 중남미사업단 교수>

앤 커소이스와 존 도크가 쓴 ‘역사, 진실에 대한 이야기의 이야기’란 책이 있다. 이 책은 구체적인 역사 이전에 가장 근원적인 질문인 ‘역사란 과연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두 저자는 서구 역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부터 우리에겐 ‘총, 균, 쇠’로 알려진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란 작품까지 세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실 역사란 개념이 생긴 이래 학자들은 이것과 관련해 끊임없이 논쟁해왔다.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이후 랑케, 크로체, 니체, 부르크하르트, 콜링우드, 카, 토인비, 헤이든 화이트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불가리아 출신 츠베탕 토도로프란 학자도 그렇다. 토도로프는 ‘역사의 윤리’란 책에서 진실을 두 가지 개념으로 구분한다. 하나는 ‘적합한 진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럴듯한 진실’이란 개념이다. 적합한 진실은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과 같은 진실이고, 그럴듯한 진실은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이유를 설명하는 것과 같은 진실이다. 2018년 4월27일 남북한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다는 사실은 적합한 진실에 속한다. 그러나 두 정상이 왜 만났는지 이유를 설명하라면 대답은 복잡해진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각자는 자신에게 가장 그럴듯하게 보이는 이유를 진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미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법정에선 발생한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더 그럴듯하게 설득하는가에 따라 판결이 결정됐다고 한다.

한 정치인의 욕설과 관련한 뉴스가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이를 제기한 측의 지지도가 전혀 오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첫째, 이미 오래된 이야기여서 이를 듣는 사람들이 그 뉴스에 무감각하다. 둘째, 비록 잘못된 행동이지만 욕설을 할 만한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고 사람들이 믿기 때문이다. 이미 다수의 사람이 그럴듯한 진실이 있다고 믿고 있는 일에 욕설을 했다는 사실만 반복한다고 하여 다수의 판단을 뒤집을 수는 없어 보인다. 반대편에 있는 정치인도 충분히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다. 이미 대중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는 사실의 반복보다는 자신이 왜 그 지역의 단체장으로 적합한지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묘안을 찾는 것이 더욱 시급해 보인다.

정치인들에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젠 제발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출마했다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봉사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하자. 높은 연봉과 다양한 혜택을 누리면서 봉사하기 위해 출마했다고 말하는 위선적인 정치인보단 국민이 보기에 그럴듯한 진실을 실천하는 정치인을 만나고 싶다. 최권준<대구가톨릭대 중남미사업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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