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리의 일부가 되고 싶다…나이 들어가도 ‘삑삑이’는 계속할 것”

  • 최미애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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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9   |  발행일 2018-05-19 제22면   |  수정 2018-05-19
[y인터뷰] 대구 거리공연가 ‘삑삑이’ 정호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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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성로에서 “삑삑~”하는 소리를 따라가다보면 그를 만날지도 모른다. 하얀 얼굴에 분홍색 볼터치를 하고 거리를 누비며 공연을 하는 ‘삑삑이’ 정호재씨(30)다. 정씨는 2010년부터 동성로를 중심으로 거리 공연을 해왔다. 플라스틱으로 된 풀피리를 입에 물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자연스럽게 짓는 정씨를 보면 골목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는 장난꾸러기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마냥 장난스럽지만은 않다. 지난해 겨울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기획한 열혈청년극단전의 한 무대이기도 했던 그의 ‘너의 마음대로 나의 마임대로’에서는 장난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진지한 삑삑이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 16일 만난 정씨는 의외로 차분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인터뷰 중간 사진 촬영을 위해 분장을 한 정씨는 장난기 많은 ‘삑삑이’로 다시 돌아왔다. 천생 ‘광대’였다.

‘즐겁게 살자’ 좌우명…무작정 거리로
맨얼굴 부끄러워 분장…지금모습 돼
관객과 소통하려 문구점 풀피리 이용
2010년부터 동성로 중심 활동 이어가
극단 도적단 대표로 마임연극 무대도
에든버러축제 등 참가 외국관객 만나
3년 내로 6·25 참전국 투어공연 계획
거리공연 논문 쓰려 대학원 진학 준비


▶지난해 ‘열혈청년극단전’에서 한 공연을 인상깊게 봤다. 이런 공연장에서 한 건 처음 아니었나.

“삑삑이 커리어상 가장 큰 공연장이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첫날 공연을 마치고 인사하는데 뭔가 벅차오르는 감정이 있어 울었다. 처음에 거리공연을 시작했을 때부터 시작해서 모든 순간이 눈앞에 겹쳐졌다. 무대라는 액자 같은 공간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어 공연 전 관객석으로 나와 관객들과 함께 노는 시도를 했다.”

▶거리공연을 주로 하고, 대표로 있는 극단 도적단에서 하는 공연도 거리에서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본격적으로 거리공연을 시작한 건 군대를 전역한 2010년이었다. 처음 해본 건 대학교 1학년때 아르바이트였다. 군대에 있을 때 연극을 그만둘까 한 적이 있었다. 내 인생의 모토가 ‘즐겁게 살자’인데 뭘 할까 하다가 무작정 거리공연을 하겠다며 스크림 가면을 쓰고 정장을 입고 집에서 가까운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으로 나왔다. 오후 1시 정도였는데, 끝마치고 나니 밤 9시쯤이었다.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극단 도적단 또한 거리공연팀으로 시작했다. 길 도(道), 발자취 적(跡), 집단 단(團), ‘거리 위에 우리들의 흔적을 남긴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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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대구 중구의 한 카페에서 ‘삑삑이’ 정호재씨가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삑삑이라는 캐릭터는 언제, 어떻게 만들게 됐나.

“거리공연을 가면을 쓰고 시작했는데, 표정이 보이지 않다보니 동작을 크게 해야 해서 답답했다. 가면을 벗을까 했는데 맨 얼굴이 부끄러워 분장을 시작했다. 속눈썹도 붙여보고, 입술도 펭귄처럼 그리고, 얼굴도 미니언즈, 심슨처럼 노랗게 칠해보다가 시행착오 끝에 나온 게 지금의 모습이다. 볼터치 위치나 크기도 고심 끝에 정했다. 입에서 나는 ‘삑삑’ 소리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문구점에서 플라스틱 풀피리를 발견해 입에 넣어 소리를 내면서 시작했다. 의상도 한국적인 느낌을 보여주고 싶어 한복으로 만들었다.”

▶주로 선보여온 레퍼토리를 소개한다면.

“코미디를 기반으로 마임, 저글링, 풍선아트를 보여준다. 영화, 드라마를 패러디해 코믹적인 요소를 가미하기도 한다. 기술적인 것보다는 관객과 소통하고, 노는 것 위주다. 극장으로 가면 어려운 이야기가 아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 거리 공연은 제가 좋아하는 것이지만, 본업은 연극배우기 때문에 연극도 꾸준히 제작하려고 노력한다.”

▶삑삑이랑 정호재는 다른 사람인가, 같은 사람인가.

“삑삑이와 정호재를 늘 분리하는 편이다. 삑삑이일 때는 재밌게 놀지만, 공연을 위해 노력하고 공부할 때는 정호재로 차분하게 하려고 한다. 이상하게 분장하고 공연하면 아무리 관객이 많아도 긴장이 되지 않고 편안하다. 반면 배우 정호재로 무대에 오르면 자신감이 떨어진다. 무대에서 뿜는 에너지나 거기서 보여주는 여유는 내가 삑삑이를 이겨낼 수 없다.”

▶계명대에서 연극을 전공한 걸로 알고 있는데, 원래 연극을 하고 싶었나.

“원래는 체대 입시를 준비하다가 디스크가 생기면서 포기하고, 연극학과 입시를 1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준비했다. 동창 중에 한 명이 연예기획사 오디션을 봤다 최종까지 올라가서 떨어졌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일단은 연예인이 되고 싶어 연극과를 가게 됐다. ‘우주 대스타’가 될 거라고 농담삼아 이야기 했는데, 대학에 들어와서 공연을 하면서 재밌고 즐거워서 연예인이 되지 못한 실망감은 없어졌다.”

▶지난해 외국에서도 거리공연을 한 걸로 알고 있다.

“8월 한달 동안 영국 에든버러 축제, 프랑스 오리악 축제의 거리공연에 참가했다. 파리, 로마에서도 공연했다. 나는 대구에서 혹은 한국에서만 특이하게 거리공연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유럽에 가서 공연하니 재밌기도 했고, 자신감도 많이 얻었다. 처음 가서는 외국 관객들의 웃음 포인트를 잡는 데 2~3일 걸렸다. 이분들은 어떤 상황보다는 나의 리액션에 웃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걸 한국에 와서도 활용하니 원래 웃는 거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웃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정호재로도 공연을 해보고 싶고 삑삑이도 더 큰 커리어를 만들어보고 싶어 좀 더 많은 공연을 할 생각이다. 3년 내로 6·25전쟁 참전국을 투어하면서 여러분의 할아버지, 조상님이 싸워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공연을 하고 싶다. 대한민국 광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얼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서로 경쟁하듯 소리를 높이는 자극적인 버스킹보다는 조용한 공원에서 시를 읽어주고 관객과 대화하는 공연도 해보고 싶다. 공연 경력은 많지만 아직 어떤 분들은 제가 전문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대학원 진학도 준비하고 있다. 거리 공연에 대한 논문을 쓰고, ‘거리공연가’라는 직업군도 명확하게 정착시키고 싶다.”

▶‘너의 마음대로 나의 마임대로’는 한 남자의 인생을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삑삑이의 모습도 그런 식으로 변해갈까.

“여러모로 고민하고 있다. 최근에 삑삑이의 모습을 걱정하는 분이 많다. 지금은 아직 30대 초반이니 귀엽게 보지만, 나이가 들면 되겠냐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처음 거리공연 했을 때는 귀여운 오빠였고, 이제는 귀여운 삼촌이고, 앞으로는 귀여운 아저씨, 할아버지면 된다. 삑삑이는 계속 할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변화될 것 같다. 나는 그냥 거리의 주인이 아닌 일부가 되고 싶다. 사람들이 나의 공연을 보고 웃고 나중에도 생각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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