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예술가의 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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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8 07:42  |  수정 2018-05-18 07:42  |  발행일 2018-05-18 제16면
[문화산책] 예술가의 해탈
천정락 (대구시립극단 수석단원)

감정이나 생각이 과하면 마음이 답답하거나 괴로워진다. 사전(辭典)에서는 이것을 번민이라고 한다. 붓다(Buddha)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조차 번민이며, 그 번민은 희로애락에서 오는 것이라고 했다. 번민이 없다는 건 해탈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의 대부분이 희로애락이거늘 어찌 이 번민을 없애며 살 수 있을까?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창작을 위해 번민 속에서 괴로워한다. 연재(連載)작가들은 마감시간에 쫓겨 신경이 예민해지고 성격까지 날카로워진다. 그 답답함과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흔히들 창작의 고통에는 산모의 고통에 비유할 만큼의 아픔이 따른다고 한다. 고통 속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은 번민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는 일상이 계속된다고 할 수 있다. 해탈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삶이다. 해탈은커녕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와 번민에 시달리게 된다.

배우들은 그 배역에 맞는 자신만의 역할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필자의 경우 이따금씩 술의 힘을 빌려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도 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술 자체가 힘들 수 있지만,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거나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가끔 술자리에서 술집안을 둘러보면 다양한 상황을 접할 수 있다. 시종일관 웃음이 넘치는 자리, 열을 올리며 갑론을박을 벌이는 자리가 있는가 하면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는 연인이 있기도 하다. 술자리는 그야말로 희로애락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렇듯 술잔 속에 희로애락이 들어있지만, 술을 마시면 자유로워지고 편한 상태가 되어 예술가들의 번뇌를 잠시나마 해결해주는 아이러니가 있는 것 같다.

해탈이란 굴레나 얽매임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즉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편안한 상태가 해탈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 생각이나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마음속의 것들을 비운다면 누구나 해탈이나 초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비운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연기(演技)를 하다 보면 힘을 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거장들의 음악을 듣거나, 그림이나 연출작품을 보면 편안함을 느낄 때가 있다. 수많은 날들을 고민과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쳐, 해탈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술잔 속에 희로애락과 자유롭고 편안함이 있듯이, 예술가들의 번민 속에 해탈에 가까운 그 무엇이 있다. 예술가들의 고민이 깊어질수록, 번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면은 고요해지고 자유로워지며 해탈이라는 영역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천정락 (대구시립극단 수석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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