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울산 북구 강동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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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1   |  발행일 2018-05-11 제36면   |  수정 2018-05-11
귀신고래는 귀신같이 사라지고 대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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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정자항의 귀신고래등대. 정자 앞바다는 선사시대부터 고래가 회유하던 곳이었다. 귀신고래는 1970년대 이후 귀신같이 사라졌고 지금까지 본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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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항 횟집거리에 대형 대게집이 흔하다. 문어와 가자미가 주요 어종이지만 최근에는 대게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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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항 물양장에서 건조 중인 가자미는 즉석에서 팔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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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항. 바다는 호수 같고 마을은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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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 화암 주상절리. 약 2천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것으로 정자해수욕장 끄트머리에 소규모로 발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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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는 용바위 전망대. 왼쪽의 다리는 당사 해양 낚시터다.

울산 시내를 관통해 동해로 가는 산을 넘는다. 정자항 이정표는 야박할 만큼 드문데 이따금 ‘강동해안’이라는 안내판을 스쳐 지난다. 골똘해진다. 강동은 강의 동쪽일 터인데, 강은 무슨 강인가. 강을 건넜던가, 건널 강이 있는 것인가. 나중에 보니 강은 동천강이다. 7번 국도와 비슷하게 울산 시내를 남북으로 흘러 태화강에 합수된다. 강은 벌써 건넜다. 이 시원한 산길이 이미 강동이다. 산자락과 산자락 사이에 담긴 바다가 불쑥 나타난다. 역삼각형의 바다는 점점 커지더니 가없이 펼쳐진다. 동해다. 정자 앞바다다. 동시에 강동 해변이다.

긴 방파제 끝 흰고래 붉은고래 치솟아
항구 둘러싼 횟집거리 대형대게집 밀집
정자항 물양장 건조중 가자미 즉석 판매
모래·몽돌 섞인 길게 뻗은 정자해수욕장

암반이 판자처럼 중첩, 갯마을 판지마을
왕건이 울산박씨에게 하사한 12구 바위
당사항 용바위·넘섬 연결한 다리 낚시터
5개 어촌 이은 5.36㎞ 산책 강동누리길


◆정자동 정자항, 산하동 화암

강동동은 울산 북구의 행정동이다. 정자동, 구유동, 당사동, 어물동 등 9개의 법정동을 관할한다. 강동동의 북쪽은 울주군 양남, 남쪽은 울산 동구니 강동해안은 울산 북구의 동해안 전부라 해도 별반 틀리지 않다. 그 중에서 가장 큰 항구가 정자동 정자항이다. 마을의 나무숲이 좋은 정자(亭子)를 이룬다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지금 정자항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보이는 것은 높은 아파트와, 건설 중인 높은 아파트다. 그러나 조금 시선을 낮추면 야트막한 언덕에 초록 숲이 생글거리는 것이 보인다.

항구의 긴 방파제 끝에 흰 고래, 붉은 고래가 하늘을 향해 몸을 치켜세우고 있다. 귀신고래등대다. 정자 앞바다는 선사시대부터 고래가 회유하던 곳이었다. 귀신고래는 1970년대 이후 귀신같이 사라졌고 지금까지 본 사람이 없다. 항구를 둘러싼 횟집거리에 대형 대게집이 흔하다. 정자 앞바다의 주요어종은 문어와 가자미지만 최근에는 대게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고래는 떠나고 대게가 왔다. 가자미는 여전히 많다. 정자항 물양장에 뽀얀 가자미가 아트마켓의 작품들처럼 진열되어 말라가고 있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여인들이 경쟁하듯 가자미를 산다.

정자항 북쪽으로 정자해수욕장이 길게 뻗어 나간다. 모래와 까만 몽돌이 섞인 해변이다. 먼 해변에 빼곡한 은빛 아파트 숲은 산하동 도시개발구역이다. 그리고 해변의 끝에는 ‘꽃 바위’라 불리는 ‘화암(花岩)’이 피어있다. 양남 읍천항의 주상절리와 비슷하게 지표면과 평행하거나 비스듬하게 경사진 수평 주상절리로 육각형의 단면이 꽃처럼 보여 화암이다. 약 2천만년 전인 신생대 제3기 화산활동의 작품이라 한다.

◆구유동 판지, 복성, 제전마을

정자항 남방파제의 남쪽으로 정자천이 바다로 흘러든다. 여기서부터 구유동(舊柳洞)이고 해안을 따라 판지, 복성, 제전 마을이 이어진다. 강동은 신라시대 때 율포(栗浦), 고려시대 때는 유포(柳浦)라 불렀다. 현재의 구유동이다. 구유동은 고종 때까지 강동의 중심이었다.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 박제상(朴提上)이 일본에 인질로 잡힌 미해왕자(美海王子)를 구출하기 위해 출발한 곳이 율포다. 왕자는 구했으나 그는 붙잡혀 살해되었다.

방파제 남쪽의 작은 곶에 판지(板只)마을이 들어서 있다. 바다에 면한 암반들이 판자처럼 중첩되어 있는 갯마을이다. 판지마을 앞 바다에 ‘양반돌’ 혹은 ‘박윤웅돌’이라 불리는 특별한 곽암(藿巖)이 있다. 왕건이 918년 고려를 건국할 당시 이 지역의 토호였던 울산박씨 시조 박윤웅(朴允雄)에게 하사한 12구의 바위다. 바위의 소유는 곧 미역 채취권의 획득이다. 조선 영조 때 어사 박문수가 주민들의 호소를 듣고 바위를 나라에 환수시켰더니 이후 3년 내내 미역 흉작이 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박문수는 ‘위대한 공은 영원히 썩지 않는다’는 뜻으로 바위에 ‘윤웅(允雄)’이라는 글자를 새겼다는데 지금은 확인할 수 없다. 바다를 내려다본다. 얕은 물속에 초록 풀 두른 바위들이 어른거린다. 무엇이 ‘양반돌’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두가 곽암이다. 판지 돌미역은 지금도 유명하다.

곶의 모양대로 흐르는 도로는 한적해서 넉넉하다. 집들은 병아리 솜털처럼 깨끗하다. 왜 바닷가 마을들은 언제나 깨끗할까. 곶의 동쪽 끝 선착장은 ‘홈나루’, 나루 앞의 돌출된 끝은 ‘판지 홈나루끝’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이름을 가진 것들의 얼굴은 다정하다. 판지 남쪽은 복숭아나무가 많다는 복성마을이다. 자그마한 포구에 용굴바위, 고동바위, 장바위, 땅바위 등 갯바위가 무성하다. 복성 남쪽은 제전마을. 옛날에 닥밭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북구연안에서 유일하게 북쪽으로 포구 입구가 나있다. 낮은 언덕과 갯바위들이 남동풍과 파도를 막아 웬만한 태풍에도 파도가 넘는 일이 없는 천혜의 포구다.

◆당사동 우가, 당사 마을

제전마을을 지나면 당사동(堂舍洞)이다. 서낭당이 있던 마을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당사동 가운데에 우가산이 솟아 있는데 그 동쪽에 우가마을, 남쪽에 당사항이 위치한다. 우가(牛家)는 마을의 지형이 소가 누운 것 같이 생겨 부르게 된 지명이다. 산의 이름도 마을에서 왔다. 아담한 마을이다. 이곳 바다 역시 돌미역 채취의 적지로 알려져 있다. 이제 당사항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항구는 호수처럼 고요하고 은은하게 눈부시다. 마치 볼록렌즈처럼 빛을 모으는 마을 같다. 항구 남쪽에 바다로 걸어가는 다리가 있다. 용이 승천했다는 ‘용바위’와 파도가 모두 걸려서 넘어진다는 ‘넘섬’을 연결한 다리로 해양 낚시터다. 참돔·우럭·농어 등 다양하게 잡혀 인기가 높다고 한다. 용바위 꼭대기는 전망대다. 청동의 커다란 용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남쪽으로 물고기 모양의 등대가 서있는 작은 마을이 손에 잡힐 듯하다.

정자항 남방파제에서 여기 당사마을까지 5.36㎞를 ‘강동 누리길’이라 한다. 울산 북구의 개발제한구역 내 5개 어촌인 판지, 복성, 제전, 우가, 당사마을을 이은 해안 산책길이다. 정자항 부근에서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1027번 지방도와 거의 나란하다고 보면 된다. 걸어도 좋고 달려도 좋다. 어느 길이나 속살속살 흐른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경주, 부산 방향으로 간다. 언양 분기점에서 16번 울산선을 타고 울산IC에서 내려 7번 국도를 타고 울산공항 방향으로 간다. 공항 직전에 감포, 정자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해 31번 국도로 가면 동해로 가는 산길, 산 넘으면 바로 정자항이다. 당사항 해양낚시공원 입장료는 1천원. 낚시인은 1만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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