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뼈·심장까지 ‘뚝딱’…바이오 프린팅 ‘의학혁명’ 일으킬까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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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0 07:33  |  수정 2018-05-10 07:34  |  발행일 2018-05-10 제29면
20180510

100세 시대. 인간의 수명이 100세에 달하는 시대다. 기대수명(출생아가 앞으로 살 것으로 기대되는 연수)이 빠르게 상승함에 따라 나온 말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1960년 52세에서 2017년 81세로, 한 해 평균 약 0.5세씩 증가했다. 이처럼 놀라운 수명 증가 속도는 ‘건강’이란 조건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유전적이거나 후천적인 이유로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장기 중 일부가 손상돼 기능을 하지 못하면 100세 시대는 희망사항에 그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장기이식’이다. 한국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센터에 따르면 장기이식 누적 대기자는 3만명을 초과한다. 대기 기간은 약 2년 소요된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의 생육된 장기를 사람에게 붙이는 이종장기이식술도 임상실험이 성공적으로 완료됐으나, 윤리적인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러한 여러 장애 요소들을 극복하기 위해 개발되고 있는 기술이 ‘바이오 프린팅’이다.

세포를 쌓아 장기 만드는 기술
미래유망 기술 중 하나로 꼽혀
윤리적 문제 논란…극복 요소

美 미주리대 심근조직·혈관 제작
국내서도 인공광대뼈 이식 성공
중앙대병원 두개골수술과 접목
환자맞춤형 인공뼈로 채워넣어

경희대치대 임플란트 대체 연구
치아조직 재생기술 등도 선보여

◆ 3D 프린터가 인체도 본뜬다

바이오 프린팅은 살아있는 세포를 쌓아 장기를 만드는 기술이다. 쾌속조형(Rapid Prototyping; RP) 기술을 응용한 적층 방법으로 인간의 세포를 원하는 형상 또는 패턴으로 차곡차곡 적층해 조직이나 장기를 제작한다. ‘3D프린팅’을 장기제작에 확대 적용한 기법으로 입체 프린터 기술의 최고 단계로 불린다.

이 기술은 2016년 10년 뒤 사회를 바꿀 주요 기술로 선정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그해 ‘미래 유망 기술 세미나’를 열고 10년 뒤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10대 미래 유망 기술과 창업 전망이 밝은 유망 사업 아이템 55개를 발표했다. 미래 유망 기술로 뽑힌 분야엔 바이오와 헬스케어 기술이 많았고, 이 중 바이오 프린팅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3D 프린터가 심장 등 인간의 장기를 찍어내게 되면 의학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기대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10여년 전부터 진행됐다. 2003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의대 블라디미르 미로노프 교수는 프린트에 사용되는 잉크 대신 생체물질(세포덩어리)을 분사시켜 3차원 튜브모양의 인체 조직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고했다. 연구팀은 3차원 구조를 만들기 위해 세포와 특수 젤을 층별로 하나하나씩 겹쳐 쌓아나가는 적층 방식을 사용했다. 이렇게 제작된 3차원 인공튜브를 따라 액체를 흘려 보내는 작업을 수행했다. 미로노프 교수는 이러한 방법에 의해 동맥, 정맥, 모세혈관 등의 조직을 제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기술은 5년 뒤 한단계 더 발전했다. 2008년 미주리 대학의 가버 포르가치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실험용 바이오 프린터 제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보고했다. 닭에서 추출한 세포를 사용해서 실제로 기능하는 혈관을 비롯한 심근조직을 바이오 프린팅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 기술은 기존 한번에 하나씩 세포를 출력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잉크 방울에 수만개의 세포를 담고 있는 구상체의 ‘바이오 잉크’를 분사시켜 세포들을 입체구조 형태로 추출해낸 것이다. 하나씩 출력하는 프린팅보다 세포에 가해지는 충격도 덜하며, 구상체의 바이오잉크들이 훨씬 더 잘 융합돼 장기의 세세한 부분들까지 일일이 출력할 필요 없이 일정 프로세스를 진행시키면 살아있는 세포들끼리 서로 융합하면서 조직을 만들어내는 개념이다. 실제 포르가치 교수의 바이오프린팅을 통해 출력된 세포들은 출력된 지 70시간이 지나자 살아있는 조직으로 융합됐고, 90시간이 경과하자 심근조직이 일반 심장처럼 뛰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이오 프린터 기술의 국내 현주소

국내에서도 바이오 프린팅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지난해 중앙대병원 구강악안면외과 이의룡·최영준 교수 연구팀은 3D프린팅으로 제작한 바이오세라믹 소재의 인공광대뼈를 광대뼈 결손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에 성공했다. 사고로 광대뼈가 주저앉아 손상된 환자를 대상으로 바이오세라믹(BGS-7) 소재를 이용한 3D 프린팅 환자맞춤형 인공 광대뼈 이식 재건 수술을 마쳤다. 국내에서 3D프린팅 기술을 바탕으로 한 인공광대뼈 이식수술에 성공한 첫 사례다.

앞서 중앙대병원은 2016년 3D프린팅 기술을 두개골 수술에 접목시켜 수술을 성공시켰다. 병원 의료진은 당시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뇌지주막하 출혈’로 입원한 환자가 입원 당시에 부풀어 오른 뇌혈관이 터지지 않도록 두개골 뼈를 제거했다. 이후 시간이 지나 부푼 부위가 줄어들자, 의료진은 3D프린터로 뼈와 뇌 내의 공간을 스캔해 환자의 머리에 꼭 맞는 인공뼈를 다시 채워넣었다. 의료진은 두상을 스캔하고 제작한 뒤, 실제 머리뼈와 비교하고 수정하는 등 꼼꼼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경희대는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임플란트를 대체하는 치과 치료를 연구 중이다.

경희대 치과대학 권일근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치아조직 재생기술 개발’이라는 연구과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에 선정됐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바이오 소재와 3D 프린팅을 활용해 자가 세포로 치아 조직을 재생시키는 기술을 실용화할 계획이다. 그간 사람에게 적용 불가능했던 초기단계 바이오 치아를 환자 본인의 세포를 사용해 가능하게 만드는 연구다. 권 교수팀은 임플란트를 대체할 수 있는 치료법 개발을 위해 하이드로젤(기본 성분으로 물이 들어 있는 젤리 모양 물질) 기반의 바이오융합 소재와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개인 맞춤형 소재 실용화도 기대된다.

이처럼 3D프린터로 인간의 장기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3D프린팅은 단순한 모형 제작뿐만 아니라 인체조직까지 본뜰 수 있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매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는 3D프린팅을 4차 산업혁명을 이끌 미래유망기술 중 하나로 꼽으며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의학계는 3D프린팅 기술이 수명연장과 획기적인 의료산업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한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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