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뒤덮은 습지에 공사 굉음…희귀 동식물 개체 수 급감

  • 최보규
  • |
  • 입력 2018-05-09 07:39  |  수정 2018-05-09 07:40  |  발행일 2018-05-09 제7면
대구 마지막 생태하천 ‘동화천’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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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동화천의 본모습. 우거진 나무와 풀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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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순환도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동화천 구간. 하천변에 울창했던 왕버드나무와 수풀은 사라지고 흙바닥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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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마지막 생태하천’ 동화천. 인간의 때가 묻지 않아 자연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천연의 공간이다. 하지만 동화천이 수년째 일대에서 진행되는 개발공사로 시름하고 있다. 자연생태계는 훼손·변형돼 제 모습을 잃고 있다. 동화천의 명물인 왕버드나무 군락 일부가 공사의 흔적과 함께 사라졌고, 원앙, 구렁이, 붉은배새매 등 동화천 인근에서 관찰되던 법정보호동물도 자취를 감췄다. 수풀 사이를 흐르던 동화천의 물길은 공사 차량이 다닐 길을 내느라 뒤틀리고 폭은 좁아졌다. 영남일보는 개발공사로 인해 꺼져가는 동화천의 숨결을 추적했다.

◆동화천에 울리는 기계소리

최근 대구시 북구 연경공공주택지구 조성공사 1공구 주변. 공사현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대구 북구청에서 오래전에 세운 듯한 ‘이 지역은 개발제한구역입니다’라는 표지판이 넘어질 듯 위태롭게 서 있었다.

공사 현장으로 진입하자 물길을 사이에 두고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양쪽 하천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천 오른쪽에는 굴착기 2대가 모래 더미 속에 파묻힌 채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동화천변을 가득 덮었던 초록 물결은 온데간데없고 황톳빛 흙과 모래만이 공사현장을 빼곡히 채운 채 하천의 흐름을 휘감고 있었다. 제방을 만든다며 쌓은 흙더미 위에는 콘크리트를 발랐고, 아래 벽면에는 회색의 돌을 인위적으로 박아넣었다. 현장의 인부는 “조경부지 조성공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하천 왼쪽은 명확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왕버드나무 군락과 수풀로 우거져 초록의 위용이 뿜어져나왔다. 황톳빛 흙과 초록빛 자연의 대비. 그것은 황폐와 풍요의 괴리였다. 인근 전망대에 올라 공사현장을 내려다보니 모습은 더욱 가관이었다. 우거진 습지로 가득해야 할 동화천 곳곳이 아스팔트 포장도로와 다져진 모랫바닥으로 변해 있었다. 일부 개발공사 구간에는 흙과 쪼개진 암석이 하천 일부를 뒤덮어 가늘게 흐르는 물줄기만이 동화천의 일부임을 증명했다.


택지개발·순환로 건설 동시진행
초록물결 천변은 온데간데없고
수달 노닐던 물길도 제모습 잃어
명물 왕버드나무 군락마저 훼손
하천 일대 ‘생명상실’ 적나라해



각종 개발공사의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동화천의 모습이 크게 바뀌고 있다. 대규모 공공주택지구개발과 4차 순환도로 건설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동화천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공사 구간에 포함된 동구 공산동부터 북구 학봉 일대까지의 피해가 특히 크다.

현재 이곳에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북구 서변·연경동과 동구 지묘동 일대에 8천세대에 육박하는 대규모 공공주택지구를 개발하고 있다. 동시에 한국도로공사도 4차순환도로 제5공구 공사를 진행 중이다. 동화천 주변 돌산을 깨 터널과 도로를 만들고 이는 동화천 위로 지나갈 예정이다. 북구청은 2020년까지 동화천 하류 일대 제방을 보강하고 수변공간을 조성하는 재해예방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북구청에 따르면 현재 실시설계용역에 들어간 상태로, 이르면 올해 말 공사가 시작된다. 앞서 동구청은 공산동 일대 하천 정비사업을 완료한 바 있다.

◆수치로 나타나는 생명의 상실

문제는 앞으로다. 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생겨나는 동화천의 환경훼손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초 주택공사 등이 친환경적으로 개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론적인 구상일 뿐 하천 훼손을 막는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게 전반적인 인식이다. 하천의 선형만 유지될 뿐 주변 생태계 파괴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동화천은 대구의 마지막 생태하천이다. 도심 안에 자연 모습 그대로 갖고 있는 곳은 광역시 중 대구가 유일할 것”이라면서 “자연을 파괴하면서 친환경적으로 개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구잡이식 개발로 동화천의 생태를 망가뜨려서는 안 될 일”이라고 비판했다.

동화천은 대구 유일의 도심 자연하천으로, 멸종위기종도 서식하고 있어 보전의 필요성이 높은 곳으로 꼽혀오고 있다. 인근 지역 주민들도 법적보호종을 목격한 바 있다고 증언했다.

동화천변에서 4년째 암벽등반을 해 왔다는 오동환씨(50·경산시)는 “오전, 오후 가리지 않고 연경동 도약대에서 암벽등반을 수년간 해 왔다. 장수하늘소, 고라니 등을 자주 봤다. 자연이 살아있는 장소라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이에 일부 주민은 개발에 대한 아쉬움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20년째 지묘동에 살고 있다는 박모씨(71)는 “당장 사람들이 편한 것만 생각해 개발하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화천은 고라니와 수달이 뛰노는 귀중한 자연자산이다. 자연환경 때문에 이 지역으로 이사왔다는 주민들도 많다”며 “하천을 정비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만 인간 편의에 따라 막무가내로 개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최근 영남일보가 확인한 대구연경공공주택지구 사후환경영향조사평가 결과는 동화천 주변의 ‘생명상실’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이나 천연기념물 등 법정보호종은 10년 전 사전환경영향평가 당시 수달, 구렁이, 붉은배새매, 흰목물떼새, 원앙, 황조롱이 등 6종이 동화천 주변에서 관찰됐으나 지난 2월 공개된 사후환경영향평가 결과에서는 수달, 황조롱이 등 2종만 확인됐다.

이밖에 육상식물(385분류군→209분류군), 육수식물(17과 29분류군→10과 20분류군), 조류(27과 51종 1천457개체→16과 29종 403개체), 저서성 대형무척추동물(34과 48종 755개체→25과 30종 540개체) 등 분류를 가리지 않고 전반적으로 크게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조영호 영남자연생태보존회장(식물생태학 박사)은 “조사단체나 공사주체가 낙관하는 것만큼 훼손된 자연을 복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특히 동화천 물속 생태계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LH 대구연경사업소 관계자는 “공사를 하다보면 환경에 피해를 안 줄 수가 없다. 그러나 동화천 자연보전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있었던 만큼 사후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하천 준설을 삼가는 등 최소한의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공사하도록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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