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 ‘테이블탑’ 박효승 대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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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2   |  발행일 2018-03-02 제41면   |  수정 2018-03-02
“집에서 숭늉처럼 마시는 로컬원두 유통전문브랜드 성장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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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4년 차의 커피맨인 ‘테이블탑’ 박효승 대표. 그녀는 로스터리카페에서 유행하고 있는 중·강배전보다 생두 고유의 향이 살아 있는 약배전을 고집한다.

한국 원두커피의 개척자로 불리는 커피명가의 안명규. 그가 있어 한때 대구는 강릉이 명함을 못 내밀 정도의 커피도시로 불릴 수 있었다. 그는 한국스페셜티커피협회 초대 회장이었고 그 협회의 3대 회장이 바로 강릉커피의 리더격인 ‘테라로사’의 김용덕 대표다. 김 대표가 회장이었던 시절 협회 총무이사였던 사람이 바로 박효승 ‘테이블탑(Tabletop)’ 대표다. 테이블탑은 달서구 월배에 베이커리커피숍과 교육 공간을 가진 본점, 그리고 수성구 황금동에 고품격 로스팅하우스를 가진 로컬 커피 브랜드. 특히 최상급 생두와 최적의 약배전 로스팅을 통해 누구나 집에서 쉽게 드립해서 먹을 수 있는 원두 유통전문 브랜드로 성장하는 게 꿈이다. 14년 차 커피맨인 박 대표. 그녀는 커피로 오기 위해 다양한 인생여정을 경험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대구 커피의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볼 줄 아는 안목을 갖고 있다.

14년차 커피맨의 다양한 ‘인생역정’
경북대 졸업후 대구 진출 코코스 입사
시스템 익히며 식품사업가 면모 다져
5년간 사학도로 박사과정까지 수료

커피본능 기지개
2004년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 오픈
프랜차이즈 공세 속 버티기에 한계
“가르쳐서 맛 알도록 하고 싶다”열망
대구교육청 등록 1호 커피교실 시작
원산지 생두향 최대한 살리는데 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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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부터 박효승 대표의 동생 내외가 테이블탑 베이커리 파트를 맡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베이커리커피 수요를 반영하기 위해 천연발효종 시골빵, 치아바타, 크루아상, 크로크무슈롤 등 20여 종의 밥 같은 커피빵을 팔고 있다.

◆ 패밀리레스토랑으로 간 고학력

그녀의 커피인생을 만든 건 8할이 ‘옆길’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골목에서 커피를 만졌다. 지금 그녀는 골목에서 벗어나 조금씩 광장쪽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녀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로컬 커피 브랜드는 단연 ‘커피명가’. 그녀는 경덕여고 때 시문학 동아리 회장이었다. 그땐 커피보다 음악에 더 치중했다. 원두커피보다 커피믹스가 취향에 더 들어맞았다. 그러다가 경북대 후문 골목에서 ‘세상에 이런 커피도 있나’ 싶은 그런 ‘진검커피’를 만나게 된다. 바로 커피명가였다. 점점 ‘달달커피권’에서 벗어나 ‘원두커피존’으로 발길을 옮긴다. 취향으로서의 커피맨일 뿐이었다. 커피사업도 언감생심.

경북대 식품공학과에 들어간다. 그때만 해도 4년제 대학 식품공학과 어디에서도 커피를 제대로 알려주는 데는 없었다. 졸업생들도 롯데·해태·오뚜기 등 유명 대기업 식품계열로 향했다.

그런데 그녀는 졸업생과 판이한 직장으로 들어간다. 대구에 진출한 외국계 패스트푸드 업체인 ‘코코스’였다. 코코스는 TGI프라이데이보다 더 빠른 1995년 대구 동인호텔 맞은편에 업장을 오픈한다. 1988년 국내에 진출한 코코스는 <주>미도파가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국내 최초의 외국계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기록된다. 2004년 경영난으로 인해 철수했지만 객장관리시스템 등 여러 면에서 혁신적인 경영술을 선보였다. 지방 1호점이었던 대구 코코스는 대구 진출 때 무려 100억원을 투자했다. 야심차게 공채로 매니저를 선발했다. 다들 그녀의 학력을 보곤 놀랐다. 공고 출신인 한 인사 담당자는 “경북대 출신인데 왜 여기에 지원하느냐”고 의아해할 정도였다.

서울에서 3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코코스는 스테이크, 피자, 햄버거, 프라이드치킨, 파스타 등 무려 100여 가지 패스트푸드 메뉴라인을 갖고 있었다. 완벽에 가까운 매장운영 매뉴얼, 지금 봐도 세련된 컬러풀한 메뉴판, 전용 소스공장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코코스는 진출한지 얼마 안 돼 철수를 결정한다. 당시 신세계는 도도했다. 코코스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으니 굳이 홍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달리 생각했다. 반드시 홍보해야 된다고 믿었다. 그녀의 예상이 더 적중했다. 시민 대다수는 코코스에 냉담했다. 너무 앞서간 것이다. 코코스 시절을 거치면서 그녀는 점점 식품사업가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다져간다. 1년간 코코스 시스템을 다 익히고 나니 또 다른 한계가 보였다. 외식경영을 더 공부하기 위해 퇴사를 한다.

◆ 사학도로 변신

그런데 경영학과로 가지 않고 그녀는 뜬금없이 대학원 사학과로 진출한다. 오래전부터 진정으로 공부하고 싶었던 학문이 바로 사학이란 걸 절감했다. 갈림길에서 진짜 욕망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일제강점기 여성사’를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박사과정까지 수료한다. 과거사의 흐름을 알기 위해선 선행학습이 너무나도 중요했다. 경북대 앞에 방을 얻어놓고 종일 책에만 매달렸다. 학부로 내려가서 동·서양사도 청강했다. 일어는 물론 한문, 심지어 마르크스 철학까지 공부했다. 어느날 돌아보니 쌓인 도서목록만 1천권이 넘어섰다. 교수들은 그녀가 교수가 될 것이라 봤다. 그런데 그녀는 생각이 달랐다. 좋아하는 사학이지 잘할 수 있는 사학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원없이 공부했으니 이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커피본능이 다시 기지개를 켠다. 5년 차 사학도에서 커피사업가로 터닝한다. 먹고사는 게 제일 큰 화두였기 때문이다. 일단 부모한테 종잣돈을 빌렸다. 당시 핫플레이스 먹거리타운으로 부상하던 계명대 성서캠퍼스 신당동 골목에 닻을 내렸다. 한창 잘나가던 가게를 인수해 레스호프 ‘라플라스’를 오픈한다. 1억원을 투자했다. 점심땐 학생들을 배려한 특별 메뉴를 냈다. 박효승표 볶음밥이었다. 많을 때 250그릇을 직접 핸들링했다. 당시 그녀의 외모는 정말 이 바닥에 어울리지 않았다. 곱고 보드랍고, 뭐랄까 이슬 머금은 사슴이 단신으로 정글에 나타난 꼴이었다. 주위 사장들은 며칠 못 버티고 접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7년간 버텼다.

식당 시절 커피란 놈의 덜미를 잡기 시작한다. 음식 사이에 커피를 끼워넣었다. 또 식음료에 대해 좀 더 폭넓게 알기 위해 지금은 사라진 ‘인비노’에서 와인도 배웠다.

◆ 엔즈커피의 꿈

커피를 시작했다. 라플라스를 하면서 길 건너편에 ‘엔즈(N’s)커피’를 2004년 오픈했다.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이었다. 그걸 열고 나니 로컬 커피 프랜차이즈 중 하나인 ‘시애틀의잠못이루는밤’도 생겨났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는 외국·서울발 커피 브랜드에 휘둘렸다. 판세를 분석하니 마이너 브랜드로는 절대 대기업 브랜드를 이길 수 없었다. ‘틈새시장’을 노려야만 했다. 프랜차이즈는 죽었다 깨도 갓 볶아 드립한 커피향을 압도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커피명가의 원두를 받아 쓰다가 나중엔 독자 노선을 걷는다. 커피에 맞는 쿠키도 직접 디자인해서 내놓았다. 교수와 일부 대학원생에겐 충분히 주목받는 커피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변은 넓어지지 않았다. 프랜차이즈의 위세는 상상을 초월했다. 매일 위기를 감지할 수밖에 없었다. ‘가르쳐서 맛을 알도록 하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 엔즈에서 2007년 ‘커피교실’을 시작한다. 대구시교육청 등록 1호 커피학원이 된다. 그 무렵 대구보건대에도 커피학과가 개설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커피동호회는 있어도 대중적인 커피교육 인프라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한국커피교육협회(현 한국커피협회)도 그 무렵 생겨난다. 그녀는 커피의 전위대에 서 있었다. 그해 MBC 17부작 드라마 ‘커피프린스’가 커피특수에 일조한다. 바리스타 꿈을 가진 청춘들이 그녀의 교실을 찾아왔다. 당시 박사급 커피맨은 그녀밖에 없어 강단에 서기도 했다. 엔즈커피는 점차 ‘대구커피교육학원’으로 바뀌게 된다.

◆테이블탑의 꿈

2011년 새로운 커피숍을 위해 아파트촌 개발로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는 현재 이마트 근처로 이전한다. 상호도 바꿨다. ‘테이블탑’이다. 최고의 커피를 만들겠다는 그녀의 신념이 담겨 있다. 커피를 알수록 모르는 게 더 늘어났다. 생두를 생산하는 현지 농장의 흐름, 그리고 농장에서 한국으로의 수입 경로, 한국 내 유통 현황, 그리고 갖고 온 생두를 어떤 로스팅기기에서 어떤 조건으로 볶아내고 그걸 어떤 강도로 갈아서 몇 도의 온도로 적셔내야 최고의 향미(香味)를 얻을 수 있는가, 그 모든 게 궁금했다. 에티오피아·케냐 등 메인 커피존에 박힌 여러 농장을 순례했다. 교과서에서 본 내용과 달랐다.

생두도 다 같은 생두가 아니었다. 뉴크롭(New crop)·패스트크롭(Past crop)·올드크롭(Old crop)으로 나뉜다. 생산된 지 1년 미만의 다크그린 빛깔의 함수율 12% 이상의 콩이 적격이었다. 1~2년의 패스트크롭, 2년 이상의 크롭은 제 향을 낼 수 없다. 하지만 악덕업자를 만나면 그걸 교묘하게 변장할 수 있다. 그게 제대로 된 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그녀가 교육에 치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녀는 여느 로스터리카페와 달리 ‘약배전’에 치중한다. 강하게 볶으면 생두 개별의 향이 사라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최고급·최저급 생두도 지나치게 볶아 버리면 맛은 같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원산지별 생두의 향을 최대한 살리는 게 목표다. 이와 관련, 원두를 사기 전 향을 미리 맡아볼 수 있게 대륙별 원두향을 담아 놓은 ‘원두시향키트’도 구비해놓았다. 그녀는 아직 대구가 커피도시 같지 않단다. 뭐랄까, 그냥 ‘프랜차이즈 커피에 중독된 도시 같다’고 믿는다. 그래서 체인사업에 거리를 둔다. 언젠가 ‘본방사수 커피의 진심’이 이길 날이 올 거라고 확신 때문이다. (053)585-5247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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