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 연근요리 전도사 김숙란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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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3   |  발행일 2018-02-23 제41면   |  수정 2018-02-23
“샐러드·초무침·탕수·떡갈비·화전…연근 봄요리 맛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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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이어 최근 대구시와 손을 잡고 희망업소를 대상으로 사계절 연근메뉴를 전수한 전통요리연구가인 김숙란씨. 그녀는 수성구 파동에 차린 요리전수실인 ‘맛을 만드는 사람들’에서 수강생의 눈높이에 맞춘 각종 요리를 가르쳐주고 있다.

전국이 ‘연지(蓮池)’로 흘러넘친다. 연도 연근파와 연꽃파로 나뉜다. 대다수 지자체는 연꽃에만 매달린다. 대구는 ‘연근’으로 이름값을 한다. 2010년 전국 연근 생산면적은 584㏊. 이중 대구가 227㏊(동구 반야월 116㏊, 동구 신평동 26㏊, 달성군 하빈면 봉촌리 등 85㏊). 대구 연근 재배면적은 전국의 34.9%, 생산량은 4천800t으로 전국의 30.7%를 차지한다. 현재는 그 비중이 40%대에 육박한다. 1990년대 중반 ‘연근=힐링푸드’란 인식이 퍼지면서 98년 ‘반야월 연근작목반’이 등장한다. 이들은 2003년 비닐하우스 속성 재배 농법을 개발해 연근 출하시기를 당기고 생산량을 늘리는 데 성공한다. 특히 품질로 인정을 받은 하빈면 봉촌리 연근은 반야월 연근과 함께 전국 최강 연근으로 군림한다.

2013년 대구시가 연근도시의 이미지를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연근 메뉴개발에 나선다. 이때 전통요리 연구가 한 명이 주목을 받게 된다. 약선요리 관련 대통령상을 수상한 수성구 상동 약선한정식 ‘소담정’의 산파역인 김숙란씨였다. 대구에서 처음으로 연근을 이용한 ‘대구대표정찬’을 개발한다. 당시 연근 메뉴는 연잎밥 정도. 기존 요리계에선 연근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식감이 떨어지고 색다른 맛도 내기 어렵다는 게 연근요리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대구 연근 생산량 전국 40%대 육박
다양한 연근 메뉴개발·보급 재시동

5년만에 연근요리 전도사 나서다
지역 첫 연근 이용한 대표정찬 개발
전통 요리법 활용 전문메뉴도 출시
23개 업소에 사계절 연근요리 전수


하지만 그녀는 전통요리법을 충분히 활용해 연근을 이용한 떡갈비, 물김치, 올방개묵, 샐러드, 두부속박이, 연근탕수, 수제비 등을 개발한다. 연근요리에 대한 매력포인트를 감지한 대구의 몇몇 식당이 연근 전문 메뉴를 출시하기 시작한다. 달서구 본동 건강음식전문식당인 ‘연빈재’, 달서구 두류동 ‘들메꽃’, 달서구 진천동 ‘미담’, 파계사 근처 ‘다우산방’, 달성군 가창면 ‘큰나무집’, 경주의 ‘하연지’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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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연근과 연근가루로 만든 ‘연근강정’. 닭강정의 장점을 활용한 게 특징이다. ② 연근과 어울리는 각종 견과류와 배 등을 섞어서 만든 ‘연근샐러드’. ③ 연근을 비롯해 송화·계피·강황·사과·도라지·오렌지·대추·참깨·들깨 등으로 만든 ‘연근구절판’.

◆연근요리 전문가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지역의 굵직한 한식 전문식당을 두루 섭렵했다. 그래서 대구 한정식의 맥을 정확하게 짚을 수 있었다. 그녀의 모친은 종가음식에 일가견이 있었다. 늘 그걸 보고 자랐다. 하지만 시집간 뒤 파란을 겪는다. 지인한테 연대보증을 썼다가 거리로 나앉게 된 것이다. 살기 위해 음식을 잡았다. 바닥까지 내려갔다. 한정식 ‘가락’, 법원 옆 ‘서울식당’ 등을 순례한 뒤 정화여고 앞에 있었던 ‘별장’의 주방장이 된다. 집안의 손맛이 점차 거리로 나와 비로소 상업적 감각을 갖게 된다.

당시는 주먹구구 요리시절이었다. 한식·일식·양식·중식이 혼재된 정체불명의 밥상이 유행했다. 호시절을 구가했던 요정도 위기에 봉착했다. 특별소비세를 피하기 위해 점차 한정식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안목을 키울 수 있었던 건 ‘가락’ 덕분이다. 가락은 원래 대백 근처에서 출발, 1990년대 중식당 아서원 옆으로 4층 건물을 지어 이전한다. 초창기 가락에서 일했다고 하면 묻지도 않고 데려갔을 정도다. 가락은 고만고만한 식당이 아니었다. 하나의 ‘전당(殿堂)’이었다. 이화여대 국문과 출신인 여사장은 일반 식당 여주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기품·범절·언변·서비스정신을 갖고 있었다. 냉동은 언감생심, 오직 그날 장봐서 마련한 싱싱한 식재료만 고집했다. 직원교육까지 진두지휘했다. 단골도 버선발로 맞이했다. 그래서 하루에 12켤레의 버선을 새로 갈아 신을 정도였다. 그녀가 그런 가락으로 불려간 것이다. 거기서 자기만의 한식메뉴를 마구 쏟아낼 수 있었다. 불고기, 구절판, 삼색전, 표고탕수, 전복선, 가자미식해, 신선로….

그녀는 전골식인 불고기보다 국물이 없고 갈비처럼 구워먹던 전통식 불고기 너비아니에 애정이 더 많았다. 그녀는 갈비를 양념에 재워두었다가 석쇠에 구워서 다진 잣가루를 뿌려서 냈다. “요리를 잘 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손님을 제때 잘 쳐낼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조리사라고 할 수 있죠. 현장 경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그녀의 24시간은 온통 음식에 찌들어 있었다. 쉴 틈이 없었다. 잠이 부족해 늘 눈이 충혈돼 있다. 종일 술에 취해 있는 줄 오해받기도 했다.

◆한식 컨설턴트로 터닝

지역에선 처음으로 ‘한식 메뉴 컨설턴트’로 나선다. 삼천궁, 수림, 무궁화, 수화 등의 메뉴 색깔을 바꿔주기 시작한다. 당시 일반 한식당은 퓨전식인데 그녀는 전통메뉴를 고집했다. 대구는 퓨전한정식에 안주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손맛은 더 상심할 수밖에 없었다.

2006년 서울의 유명한 한식당 ‘삼청각’에서도 러브콜이 왔다. “대량 레시피를 제대로 핸들링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저한테 도움을 요청했다더군요. 속으론 뿌듯했습니다.”

2006년 1월 ‘VJ특공대’에 소개돼 또 반향을 일으킨다. 궁중요리 고수를 찾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일반 식당에선 맛볼 수 없는 무말이물김치, 돔배기함박스테이크, 호두잡채 등을 선보였다. 전국에서 전화가 쇄도했다. 배우려는 사람이 많아서 그해 3월 수성구 파동에 요리전수 공간을 만들었다. 그게 ‘맛을 만드는 사람들’인데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실전요리에서부터 궁중요리, 약선요리, 사찰요리, 연요리, 이바지음식 등을 알려줬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식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는 식당을 찾기 힘듭니다. 가성비, 이윤 등을 생각하다 보면 자연 냉동음식, 수입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죠. 아직도 자신만의 방에 갇혀 있는 주방장이 안타까워요.”

특히 신선로는 그녀의 손을 거쳐야 제대로 된 모양새를 갖춘다. 일부 해물을 넣고 해물탕처럼 해주는 곳도 있는데 그건 표준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다. 일단 양지머리를 무를 넣어 잘 삶고 국물은 육수로 사용한다. 거기 들어간 무를 썰어 후추, 집간장(청장) 등으로 양념해서 신선로 밑에 깐다. 이후 미나리, 표고전, 간과 처녑전, 당근, 황백지단, 마지막에 고기 완자로 돌려준 뒤 육수를 붓고 끓여내면 된다.

‘궁중떡잡채’도 인기였다. 소고기, 조랭이떡, 표고버섯, 청홍 피망 등을 참기름만 사용해서 볶아낸다. ‘연저찜’은 ‘한국식 동파육’ 같은 느낌이 났다. 삼겹살 위에 양파·사과채·통후추를 얹고 연잎으로 싼 뒤 찜기에 얹어 1시간 쪄낸다. 집간장, 꿀, 인삼 등을 달여서 소스로 사용하는데 찐삼겹살을 그 소스에 넣고 졸여주면 된다.

정성일변도일 수밖에 없는 그녀의 요리과정을 보면 다들 “그건 김 선생만 하지 누가 따라 하겠어요”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새로운 연근요리 개발

90년대 초부터 연근요리에 관심이 있었다. 주변 식당에는 연잎밥밖에 별다른 메뉴가 없었다. 2012년부터 연근을 이용해 다양한 식단을 준비할 수 있었다. 김범일 대구시장이 대구를 대표할 수 있는 연정찬을 만들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희망업소가 여럿 나타났다. 그런데 정작 주인은 잘 배우는데 주방장이 항상 말썽이었다. 그들은 실험적인 요리를 거의 외면했다. 장사가 잘 된 탓도 있다. 굳이 위험을 떠안고 그렇게 실험적인 메뉴를 내밀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당시 그녀의 딸도 음식 유전자가 풍성했다. 그렇게 해서 차린 게 약선음식전문점 소담정이다. 자식 이길 부모가 누가 있겠는가. 그녀가 뒤를 봐줄 수밖에 없었다. 한 5년간 지속됐다. 제대로 된 약선요리를 선보였지만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진 시민보다 힐링푸드를 선호하는 일본 관광객, 미식가형 사업가, 오피니언 리더 등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용두사미였다. 대구발 연근요리는 시름시름 앓다가 어느 날 사라졌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이를 안타깝게 여긴 대구시가 주도적으로 연근요리 보급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덕분에 5년 만에 그녀가 다시 연근요리전도사로 나설 수 있었다. 지역의 23개 업소가 사계절 주요 연근요리 전수를 마쳤다. 지난 20일에 5가지 연근메뉴(연근배샐러드, 연근초무침, 연근탕수, 연근떡갈비, 연근화전)로 된 봄요리를 오픈했다. 1인분 1만5천원. 연밥이 포함되면 1만9천원.

봄에 가장 맛을 내는 ‘연근샐러드’는 연근과 배, 대추, 잣가루 등을 이용한 것인데 호박씨를 볶아서 뿌리고 블루베리와 건포도도 좀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여름에는 ‘연근오리밀쌈’, 가을에는 ‘연근강정’, 겨울에는 ‘연근탕’이 제격이다. 연근강정은 연근을 찹쌀가루로 반죽한 뒤 튀겨낸다. 그걸 조청에 버무려 내면 된다.

‘연근구절판’도 새로운 디저트로 평가받는다. 연근, 혹은 연근분말을 섞어 주는 게 특징이다. 연근 자체가 특별한 맛이 안 나기 때문에 궁합이 맞는 재료와 섞어주는 게 요리 포인트. 크게 보면 연근다식으로 계피와 송홧가루를 묻힌 연근이다. (010-8591-7307)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연근요리 취급점

▷중구= 거창식당, 산, 정담 ▷동구= 다중헌, 고향차밭골, 진선재 ▷서구= 복들어온날, 새복해물찜 ▷남구= 해밥달밥 ▷북구= 녹야원, 웃음터 ▷수성구= 용지봉, 아사다라, 청아람 ▷달성군= 큰나무집, 일월정, 정강희두부마을, 시목, 강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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