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과 각별 인연 美 그레이엄 목사 타계

  • 입력 2018-02-23 07:59  |  수정 2018-02-23 07:59  |  발행일 2018-02-23 제11면
북핵 위기때 訪北 김일성 설득하기도
對北 가교역할 앞장‘십자군’
北에 대해 남다른 애정 쏟아
美 역대 대통령의 영적 멘토
韓과 각별 인연 美 그레이엄 목사 타계
21일 타계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1986년 9월20일 파리의 베르시 스타디움에서 ‘오늘밤’주제의 전도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20세기를 대표하는 ‘복음 전도사’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21일(현지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몬트리트의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향년 100세.

그레이엄 목사는 전립선암과 파킨슨병 등을 앓아왔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그레이엄 목사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로 꼽혔다.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 이후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모든 미국 대통령의 ‘영적 멘토’로도 활동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 힘썼다. 60여 년간 목회자로 활동하면서 2억여 명에게 설교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6·25전쟁 당시인 1952년 서울과 부산에서 복음집회를 진행했고, 대규모 군중 선교대회도 수차례 열었다. 특히 1973년 서울 여의도광장에 열린 그레이엄 목사의 복음집회에는 100만명 이상의 인파가 운집했고, 이는 한국 개신교계의 역사적 장면으로 꼽힌다.

그레이엄 목사는 북한에 많은 애정을 쏟은 대표적 교계 지도자로 꼽힌다.WP에 따르면 그레이엄 목사는 1992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냉전 종식 이후 비틀대던 북한을 방문한 첫 외국 종교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방북은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모았다. 방북 전 그는 조지 H. W. 부시 당시 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을 만나 의견을 조율하고, 방북 후 부시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김일성에게 전달하는 등 사실상 미 정부의 비공식 특사 역할을 했다. 당시 방문에서 그레이엄 목사는 김일성대학에서 강연하고 김일성을 직접 만나 면담도 했다.

그는 1994년 북핵 위기로 빌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의 전쟁까지 계획했을 때 다시 한번 방북길에 올랐다. 당시 방북길에 동행한 스티븐 린턴 유진벨재단 대표는 이후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그레이엄 목사는 마치 마을 어른을 이해시키는 듯한 방식으로 김일성에게 (북핵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결국 김일성은 핵 시설에 대한 국제 사찰 허용에 동의했고, 몇 달 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핵 협상을 위해 방북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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