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지역에서 혁신적인 대학이 나오길 기대한다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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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1   |  발행일 2018-02-21 제30면   |  수정 2018-02-21
숨 가쁘게 달려온 대한민국
여전히 선진국 추격자 위치
국가혁신역량 주도할 대학
오히려 혁신대상이 돼 문제
지역대학 혁신에 앞장서길
[동대구로에서] 지역에서 혁신적인 대학이 나오길 기대한다
박종문 교육팀장

광복 후 70년이 넘도록 우리나라는 정말 열심히 달려왔다.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까지 이루면서 최근 근대 100년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한 발전을 한 나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숨 가쁘게 달려왔는데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추격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의 산업과 경제, 문화를 선도한다기보다는 열심히 따라잡는 나라로 분류된다. 지금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는데 또 더 달려야 하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달려야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G7이나 G10, 그리고 몇몇 국가들이 우리보다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늘 앞서가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그 나라들은 대충대충 살고 있을까. 어떤 면에선 그렇다. 우리나라처럼 밤늦도록 노동을 하지도 않고 휴가도 많다. 외견상 우리보다는 덜 피곤하게 살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들 나라는 늘 혁신에 적극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100~200년간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혁신역량을 키워 온 덕분으로 보인다. 우리가 산업화 기간 동안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열심히 달려왔다면, 그들은 지난 100~200년을 쉬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은 미지의 길을 개척해 온 것이다. 그 힘의 원천은 끊임없는 혁신에 있다.

지금과 같이 세상의 기술발전 속도가 빠른 시대에 국가혁신역량의 부족은 바로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혁신역량은 정치체계의 역동성, 경제시스템의 공정성, 사회적 불평등 완화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평가한 총체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정치적 역동성은 있으나 정치수준이 많이 낮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시스템과 심화되는 사회적 불평등은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켜 사회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두 혁신역량을 떨어뜨리고 있는 요인들이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대학혁신역량이 심각할 정도로 뒤처져 있다는 점이다. 대학이 국가와 사회변화의 주역은커녕 개혁대상이 아닌가 할 정도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혁신역량을 이야기하면서 대학을 언급한 것은 앞선 나라들 모두 대학이 그 사회와 국가의 혁신역량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은 광복 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끈 핵심인력을 양성한 고등교육기관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산업화 초기 필요한 기술인력 및 수출역군들을 길러내면서 우리나라가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게 한 역할이 크다. 그러나 그 이후 대학의 혁신역량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은 세월이 한참 변했는데도 산업화 초기 교육시스템의 골간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대학이 가진 지식은 이제 더 이상 독점적이지 않으며, 사회에 필요한 인력양성에도 한계를 보인 지 오래다. 대학교육과 취업현장 간의 미스매치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내재적 환경에다 최근 들어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그 변화의 폭을 가늠하기 어려운 거대한 물결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변화 속에서 대학이 가장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불행히도 대학은 가장 혁신하기 어려운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과거의 자만심이 독이 됐든, 기득권의 숲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혁신의 주체가 돼야 할 대학이 혁신대상이 된 현실은 국가혁신역량에 빨간불이 켜졌음을 의미한다.

지난 10년간 정부와 대학은 대학구조개혁을 외쳐왔지만 그 개혁의 속도는 너무 더디고, 내용 또한 부실하기 짝이 없다. 학과와 학부 칸막이에 막혀 새로운 교육과정 도입이나 시스템 개편은 늘 답보상태다. 학과와 학회, 학계, 산업계와 출판계, 관계(官界)에 이르기까지 거미줄 얽히듯 얽혀 혁신적인 시도를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시대가 요구하는 혁신에 스스로 나설 대학이 있을지 의문이 많다. 그래서 암울하다. 하지만 스스로 혁신에 나서는 대학이 있다면 우리나라 대학 역사에 큰 이정표를 세우고 21세기 선도대학의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지역에서 그런 대학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박종문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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