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집 두 채·공무원연금 받아도…‘무재산’결정나면 강제징수 못해

  • 최보규
  • |
  • 입력 2018-02-20 07:31  |  수정 2018-02-20 09:11  |  발행일 2018-02-20 제6면
선거보전금 반환 안하는 ‘먹튀’ 정치인
20180220

선거에는 자연히 비용이 따른다. 지방선거·총선을 치를 때마다 후보 한 명당 쓰는 선거비용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십억원에 달하기도 한다. 큰 액수이기 때문에 정부가 선거비용의 전부 및 일부를 보전해 주고 있다. 후보자들이 느끼는 금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돈에 구애받지 말고 나라와 지역의 일꾼을 뽑는 자리에 주저 없이 나서라는 것이다. 후보자는 최종 당선되거나 유효투표 총수의 15% 이상을 득표하면 전액, 10~15% 미만을 득표하면 지출한 선거비용의 절반을 돌려받는다. 동시에 선거법은 선거비용을 보전받은 이가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당선 무효형을 받을 경우 이미 지급된 선거보전금을 반환하도록 하고 있다. 선거에 대한 참여는 독려하되 부적법한 선거 과정에 소요된 비용은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주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최근 영남일보는 취재를 통해 대구·경북 지방선거 및 총선에 나갔던 후보자 일부가 선거보전금 반환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당선무효형 반환 규정 불구
쓰고나면 그만인 선거비용”
대구·경북 미납자 11명 중
미반환 사유 ‘무재산’이 82%
“빚도 많고 얹혀 산다” 반납 회피
현행법상 배우자 재산 압류 못해

“소극적인 체납 징수도 문제
재산있는 미납자 압류 안해
잔여 체납액 납세의무 소멸”

“일반 체납자보다 엄격 관리
보전금 반환 소멸시효 없애고
무재산일 때 끝까지 추적해야”


◆돌려받지 못한 세금…5억6천여만원

선거비용 미반환자는 제4회 지방선거(2006년)부터 제20대 총선(2016년)까지 모두 11명이다. 이들이 미납한 금액은 5억6천128만여원. 개인당 적게는 200여만원에서 많게는 1억5천284만원 가까이 된다.

이들이 미납한 돈은 세금이다. 당선 무효형을 받은 자가 반환하는 선거보전금은 모두 지방 및 국가예산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선거비용을 돌려주지 않는 것은 체납행위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징세 절차도 체납자와 동일하게 이뤄진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당사자에게 반환 명령을 전달하고 30일 이내에 반환하지 않으면 징수위탁을 부여받은 각 지역 세무서가 압류 등의 절차를 진행한다. 세무서 확인 결과, 재산이 없는 것으로 결론지어지면 ‘무재산’으로 분류해 징수불가 결정을 내린다.

취재 결과 다양한 미반환 사유 중 ‘무재산’은 가장 대표적인 경우였다. ‘무재산’을 이유로 선거보전금을 돌려주지 않은 이들은 2006~2016년 발생한 미납자 11명 중 9명(81.8%)이었다. 이들의 미반환 총액은 3억9천187만여원이다.


◆아내 명의 재산…무재산으로 봐야 할까

그러나 이들 중 ‘무재산’이 의심되는 일부 사례가 있었다.

지난달 25일 찾은 경북의 한 기초자치단체. 차를 타고 오래된 기와집 사이를 지나자 주변 집들과 달리 세련되게 지어진 2층짜리 단독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쪽으로 높다란 창이 나 있고 마당에 깔린 잔디 위에는 테라스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었다.

이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은 해당 지역에서 기초자치단체장을 지냈던 A씨. 그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뒤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아 1년 만에 직위를 잃었다. 이에 반환해야 할 선거보전금 8천여만원이 발생했지만 지금껏 내지 않았다. ‘무재산’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A씨 주소지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해당 주소에는 A씨 앞으로 된 목조건물이 하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현재 거주 중인 단독주택과 토지는 A씨 부인의 명의로 등록돼 있었다. 그는 “서울에 소재한 다른 집도 아내 명의”라며 “내 재산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A씨는 아내 명의의 재산을 담보로 빚을 냈다.

당시 A씨에 대해 ‘무재산’ 결정을 내린 구미세무서에 징수불가 처리된 이유를 묻자 “시간이 많이 지나 지금은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구미세무서 업무지원팀 관계자는 “또 개인과 관련된 일이라 공개할 사항이 아니다. 당시 재산이 없었으니까 무재산으로 결정하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까지 3년여간 부산 소재 모 기업 대표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는 이에 대해 “생활비를 버는 정도였다”고 해명했다. A씨는 선거비용 및 기탁금을 반환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특정 정치권력에 의해 정치적 희생물이 된 것이라 생각한다. 심정적으로 법원의 당선무효 결정에 동의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거비용을 반환하지 않았다. (단독주택은) 예전부터 아내 명의로 등록돼 있었고 (반환금을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자산을 빼돌리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배우자의 재산은 압류대상이 되지 않는다.

또 일부 ‘무재산’ 미반환자는 선거에 출마하기 전까지 공무원 생활을 이어 와 현재 공무원연금을 받고 있기도 했다.

2005년 경북지역 모 기초자치단체장에 보궐선거로 당선돼 임기를 시작한 B씨. 그는 이듬해 열린 제4회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업무추진비를 홍보사례금 형식으로 공무원 등에게 지급했다가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아 당선 무효됐다. 그는 선거보전금 6천375만원가량을 다시 내놓아야 하지만 ‘무재산’으로 징수불가 처리된 상태다. B씨는 35년가량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해당 지역에서 부군수를 거쳐 군수 권한대행까지 지낸 인물로, 매달 공무원연금을 받고 있다.

그는 선거보전금을 반환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지금 사는 집도 얹혀서 살고 있다. 빚을 낸 것 때문에 매달 받는 공무원연금도 일부 삭감돼 받고 있다. 선거보전금을 낼 형편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제20대 총선 이후 1억3천538만여원을 보전받은 국회의원 출마자 C씨. 모 기업체를 운영하던 C씨는 출마 당시 재산신고액이 2억7천여만원이었지만 지난해 말 ‘무재산’으로 징수불가 판정을 받아 선거보전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체납 징수 소극적 대응

이 가운데 관할 지역 세무서가 체납징수 과정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제4회 지방선거에서 당선됐다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된 D씨. 당선이 무효가 되면서 보전받았던 선거비용 8천658만여원은 체납액이 됐다. 이에 2005년 8월 해당 선거구를 담당하는 경주세무서가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징수위탁을 받아 징수 절차를 대행했다. A씨는 2009·2010·2011년 각각 한 차례씩 자신의 선거보전금 일부를 갚아 총 7천만원을 갚았고, 1천658만여원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경주세무서는 2016년 A씨에게 소멸시효 완성결정을 내렸다. 이에 A씨는 자신의 잔여 체납액에 대한 납세 의무가 소멸됐다.

하지만 당시 A씨는 1천322㎡의 토지와 건물 등 재산을 갖고 있었다. 경주세무서가 A씨의 재산을 압류해 납세를 촉구할 수 있었던 상황. 그럼에도 경주세무서는 이 같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세금 1천658만여원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경주세무서 관계자는 “(A씨 사례처럼 재산이 있는데도 압류하지 않는 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선거비용 체납자도 다른 국세 체납자와 똑같이 관리하고 경과를 보고한다”며 “직원들이 하는 일이다 보니 실수가 있을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대구지방국세청 관계자는 “경위를 파악해 봐야겠지만 내용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실수가 맞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공직선거법 위반 이외에 다른 법률로 당선무효가 되면서 선거보전금 반환 대상조차 되지 않은 경우도 있어 제도의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경북지역 한 기초자치단체장은 당선된 이후 6천620만원 상당의 선거비용을 보전받았지만, 인사청탁 관련 뇌물수수 혐의로 당선이 무효처리돼 선거보전금 반환 대상 명단에조차 오르지 않았다. 징수 노력을 기울일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놓치는 반환금이 결국 지방 및 국가 예산이라는 점이다. 이에 다수 국민이 손해를 입지 않도록 징세를 더욱 엄격하게 집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선거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선거비용을 보전해 줄 필요성은 있지만, 지역과 국가의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일반 체납자보다 더욱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소멸시효를 없애고 무재산으로 결정 난 경우에 대해서도 재산이 확인되면 압류 등의 절차를 엄격하게 진행해야 된다”고 말했다.

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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