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공부의 선후(先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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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19 07:48  |  수정 2018-02-19 07:48  |  발행일 2018-02-19 제20면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말했다. “군자의 도(道)에 어느 것을 먼저 전수하며, 어느 것을 뒤라 하여 게을리하겠는가? 초목에 비유하면 구역으로 구별되는 것과 같으니 군자의 도가 어찌 이처럼 속이겠는가?” 이 말은 앞서 자유(子游)가 “자하의 제자들은 물 뿌리고 청소하며, 응대하고 진퇴하는 예절을 당해서는 괜찮으나 이는 지엽적인 일이요, 근본적인 것은 없으니 어찌하겠는가”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자유를 비판한 말이다. 자하는 군자의 도는 지엽적인 것을 먼저라 하여 전수하는 것도 아니고, 근본적인 것을 뒤라 하여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만 배우는 자의 수준에 차이가 있으니 그것은 마치 초목에 크고 작음이 있어 그 종류가 구별되는 것과 같아서, 이를 고려하지 않고 한결같이 높고 원대한 것만 가르친다면 이는 속이는 것일 뿐이라는 말이다.

자유와 자하는 공자의 가장 뛰어난 제자인 공문십철(孔門十哲) 중 문학이 뛰어난 제자로 거론된다. 이 시대의 문학이 뭘 의미하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일화를 생각하면 ‘시경(詩經)’에 대한 이해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하가 “예쁜 웃음에 보조개가 예쁘며,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선명함이여! 흰 비단으로 채색을 한다고 하였으니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한 뒤에 하는 것이다.” 그러자 자하가 “예(禮)가 충신(忠信)보다 뒤이겠군요”라고 하니 공자가 말했다. “나를 흥기시키는 자가 자하로구나. 비로소 함께 시(詩)를 말할 만하다.” 회사후소는 이 일화와 같이 아름다운 자질이 있은 연후에 배움이 있으니, 오직 충신한 사람만이 예를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일화를 통해 시경의 의미를 즉각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제자가 문학에 뛰어난 제자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자하와 자유를 비교할 수 있는 일화는 ‘위정(爲政)편’에 나온다. 두 사람이 나란히 효(孝)를 묻자 공자는 자유에게는 “효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잘 봉양하는 것이 아니다. 말과 개에게도 잘 먹일 수 있으니 공경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느냐”라고 했고, 자하에게는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려우니 수고로운 일을 대신하고 음식을 봉양하는 것이 효라고 할 수 있겠는가”하고 말하였다. 즉 공자는 자유는 봉양은 잘 하나 혹 세심하게 부모의 마음을 살펴 공경하는 마음이 부족할까 염려하였고, 자하는 작은 일에도 강직하고 의로워 온화한 빛이 부족할까 걱정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자유는 그 장소와 격에 맞지 않게 원칙을 강조하고 일을 크게 벌이는 성격이라면, 자하는 작고 소소한 일에 밝고 꼼꼼한 인물로 보인다. 그래서 공자는 자하에게 군자인 선비(君子儒)가 되어야 하고 소인인 선비(小人儒)는 되지 말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자유에게는 세세한 기본생활 예법을 중시하는 자하의 가르침이 못마땅하게 비쳐졌을 것이다. 자유와 자하의 논쟁은 수천 년이 흘러 조선시대 퇴계와 남명의 논쟁으로 재현된다. 이번에는 거꾸로 남명이 퇴계가 물 뿌리고 청소하고, 응대하고 진퇴하는 절차도 모르면서 천리(天理)를 담론하고 허명(虛名)을 훔치는 제자들을 말리지 않는다고 비판하였고, 퇴계는 이에 대해 남명이 노장(老壯)에 물들었다고 비판하였다.

유학의 이념은 자질구레한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만 눈은 멀리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을 떠난 기하학적 이상세계(理想世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 뿌리고 청소하고 응대하고 진퇴하는 절차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자질구레한 현실에만 안주하여 우리가 실현해야 하는 이상세계를 도외시한다면 그런 공부가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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