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균형감을 잃어버린 사회

  • 마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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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15   |  발행일 2018-02-15 제26면   |  수정 2018-02-15
[취재수첩] 균형감을 잃어버린 사회

1946년 미국 위스콘신주 연방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조지프 매카시는 경력 위조를 비롯해 상대 후보에 대한 명예훼손·로비스트 금품 수수·음주 추태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선출직이나 고위 공직자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미국 풍토에 따라 그의 정치적 생명은 사면초가에 몰리면서 끝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던 1950년 매카시 의원은 공화당 당원대회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미국땅에서 공공연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나는 29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는 주장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2차 대전 종료 후 소련과 극단적인 대립상태를 이어가던 냉전체제에서 제기된 매카시의 발언은 미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휘발성이 강한 소재였던 만큼 매카시가 쏟아내는 말 한 마디는 사실 여부를 떠나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으며, 그의 폭로를 다룬 신문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이를 기반으로 매카시는 대중적 인지도를 높임과 동시에 지지세력을 확고하게 다지며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그의 말 한 마디로 인해 미국사회가 감당해야 했던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했다. 매카시즘(McCarthyism), 즉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으로 인한 상흔은 너무나 깊었다. 지식층조차 제대로 된 반박 논리를 내놓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또 수많은 사람이 공산주의자와 관련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너도나도 ‘빨갱이 색출’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미국 헌법정신의 근간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문제는 매카시즘의 망령이 태평양을 건너, 그것도 70여년이란 시공을 훌쩍 넘긴 현재까지도 한국 정치의 중심에 굳건히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구·경북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보수(保守)’라 칭하며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그렇다. 그들이 내세우는 보수의 사전적 의미는 원래 ‘보존과 수호’를 뜻한다. 이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구성 원리로 삼고 있는 우리 체제에 대입해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민주주의 이념과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고, 후대에 이어주겠다’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보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식은 진보의 대척점에 선 개념이라는 것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런 의식의 기저에는 자신이 소위 말하는 ‘빨갱이’가 아니라, 나라를 수호하고 지키는 ‘애국자’라는 의식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개념을 적용해 진보를 다소 극단적으로 해석한다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체제를 부정하는 비애국자(?) 집단’으로 전락하는 셈이다.

다시 1952년 당시 미국으로 돌아가보자. 공화당이 집권에 성공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양심선언과 “독재의 방식으로 자유를 지켜서는 안된다”는 개탄과 헌법 제정정신에 따라 ‘국가안보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잇따랐다. 상대를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균형감각을 되찾은 셈이다.

이처럼 우리사회도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오른쪽과 왼쪽 날개 모두가 필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가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창훈기자<경북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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