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

  • 유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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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10   |  발행일 2018-02-10 제16면   |  수정 2018-02-10
오즈의 마법사·성냥팔이 소녀…
사회를 풍자한 15편의 동화를 통해
돈과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의 모습
동화 속 ‘자본주의의 민낯’ 드러내
성냥팔이 소녀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
19세기 영국 런던의 성냥공장 여공들. <인물과사상사 제공>
성냥팔이 소녀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
동화경제사//최우성 지음/ 인물과사상사/ 288쪽/ 1만5천원

동화 ‘엄마 찾아 삼만리’의 주인공 마르코는 산 넘고 물 건너 엄마를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대체 마르코 엄마는 왜 저렇게 멀리 일하러 갔을까. 지금이야 해외에서 취업하는 사람도 많고 흔하지만 만화의 배경이 19세기 초라는 것을 보면 마르코 엄마가 저렇게도 멀리 그것도 남미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것이 낯설기만 하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는 약 900만명이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자발적 이민의 사례다. 그중 많은 이가 문화와 언어가 친근한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당시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노동력이 많이 부족했던 아르헨티나는 마르코 엄마와 같은 이주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실제 역사적 사실이 동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동화는 단순한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기록이자 증거물로 가치를 더한다. 작가들은 사회를 보는 자신의 관점을 동화에 투영했고, 동화는 그런 사회의 모습을 풍자한다.

이 책은 마르코 이야기와 같이 15편의 동화를 통해 돈과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의 모습이 동화에 어떻게 풍자됐는지 보여주며 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낸다. 예쁘고 아름다울 것만 같은 동화의 이면에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숨어 있다.

‘성냥팔이 소녀’를 통해선 산업혁명의 확산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확립을 다루며 이로 인해 발생한 계급별, 국가별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점을 지적한다. 가난한 성냥팔이 소녀가 거리에서 죽은 때는 유럽에 대기근이 발생한 시기였다. 당시 성냥은 큰 인기였다. ‘성냥팔이 소녀’가 출간되기 한 해 전인 1844년 안정적인 마찰·발화 방식으로 사고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줄인 ‘안전성냥’이 발명된다. 그러나 여전히 성냥에 들어가는 백린은 인체에 매우 해로웠다. 성냥팔이 소녀는 동사했고, 성냥공장에 취직한 소녀들은 산업재해로 죽었다. 하지만 성냥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이도 있었는데 바로 세계 성냥 생산의 75%를 차지했던 스웨덴의 ‘성냥왕’ 이바르 크뤼예르다.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괴짜 신사 필리어스 포그가 세계여행을 떠난 때는 프랑스에서 애국투자 열풍을 일으키며 수에즈운하와 미 대륙횡단철도가 놓인 직후였다. 포그는 이런 인프라를 이용해 80일이 걸리지 않고 지구를 횡단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토목 사업은 과잉투자를 불러일으켜 글로벌 불황을 야기시킨다.

우리에게 친숙한 ‘오즈의 마법사’는 단순히 소녀의 성장담이 아니라 화폐 문제를 다룬 정치적 우화다. 이 우화가 출간되기 전 열린 미국 25대 대통령선거에서 최대 쟁점은 화폐 제도였다. ‘오직 금에만 화폐의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금 본위제의 공화당과 ‘금과 함께 은도 화폐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금·은 복본위제의 인민당이 붙었다. 선거는 공화당이 이겼지만 동화 속에선 인민당이 승리한다.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묻기 위해 도로시는 ‘노란 벽돌길’(금 본위제)을 따라 ‘에메랄드시티’(금권정치가 횡행하는 수도 워싱턴)를 찾아갔으나 믿었던 마법사는 가짜로 밝혀지고(클리블랜드 대통령), 결국 자기가 신고 있던 은구두(은 본위제)야말로 어디든 갈 수 있는 마법의 신발임을 깨닫는다. 이처럼 프랭크 비움은 판타지 형식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했다.

캐나다 페미니스트 1세대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빨간머리 앤의 입을 통해 “레이첼 아주머니는 여성들도 투표할 수 있게 된다면 곧 좋은 변화가 생길 거래요”라며 여성참정권을 옹호한다든지, 로빈슨 크루소를 자본주의 기율을 준수하고 투자에 능한 자수성가형으로 묘사한 작가 대니얼 디포가 악명 높은 투기광풍으로 기록된 ‘남해주식회사’에 투자했다가 돈을 몽땅 날린 일화들도 소개된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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