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보안’블록체인 …‘新글로벌금융’의 마술사 되나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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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10   |  발행일 2018-02-10 제11면   |  수정 2018-02-10
20180210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 등 인터넷상에서 거래되는 이른바 가상화폐(암호화폐) 논란으로 요즘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가 연일 어수선하다. 투자자들은 가상화폐 시세를 확인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냉·온탕을 오간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요동치는 가상화폐 롤러코스터 등락폭 탓에 ‘투자’가 아닌 ‘투기’라며 평가절하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다. 하지만 이 틈바구니 속에서도 가상화폐의 원천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만큼은 증폭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술자들은 당시 금융인들이 절제하지 않고 과도한 투자를 하다가 큰 화를 불렀다고 상황을 진단했다. 그러면서 블록체인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고, 그 기술이 가시적으로 처음 구현된 게 바로 가상화폐다. 아이러니하게도 블록체인에 대한 기대감은 시세조종 및 조세포탈 등 가상화폐 논란 속에서 오히려 커지고 있다. 국내에도 관련 신생 벤처기업들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국내서 금지된 가상화폐공개(ICO)를 유럽에서 시도해 잭팟을 터뜨린 기업도 생겨났다. 기업 설립 후 가상화폐를 활용해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인터넷의 새 지평을 열 핵심기술로 손꼽히는 블록체인이 바꿀 금융환경은 앞으로 더 주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악전고투하는 가상화폐

사실 가상화폐 거래시장의 미래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정부의 규제 강화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시대적 흐름상 완전히 틀어막지는 못하지만 자금세탁 등 거래과정에서 나타나는 불법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는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오거스틴 카르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은 가상화폐의 대표주자인 비트코인과 관련해 “가격 변동이 너무 커 금융상품으로 적절지 않다. 리스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각국의 중앙은행이 가상화폐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 은행 총재는 “비트코인은 아주아주 위험한 자산이어서 유럽은행도 잠재적 위험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가상화폐시장 구현 원천기술 블록체인
거래내역 기록 ‘분산형 공공거래 장부’
정보 암호화 블록 생성 강력한 보안성
실시간 감시로 장부 위·변조도 어려워

무역 거래 적용땐 사기 위험성 줄이고
해외송금시 지점 상황 즉시 확인 가능

대구銀 등 국내 50여개 금융기관 참여
공인인증서 통합·공유 프로젝트 진행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관계자는 “가상화폐가 광범위하게 채택된다면 금융 안전성에 큰 위험이 된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세계 5위 가상화폐 거래소인 ‘비트 피넥스’가 비트코인 가격을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는 조사에 착수했다. 나름 가상화폐의 제도권 진입에 적극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도 최대 거래소인 ‘코인체크’가 해킹을 당해 가상화폐 5천648억원을 도둑 맞자 규제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가상화폐와 관련된 모든 홈페이지를 차단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반면 우리 정부의 경우 가상화폐 시장의 제도권 편입을 위해 지난달 30일 가상화폐 실명 전환을 시작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문제는 요즘 거론 자체가 뜸해졌다. 자금세탁 의심거래를 근절하는 방안에 더 신경을 곧추세우는 분위기다.

스웨덴은 국가 주도로 가상화폐를 발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예측불허 상황의 연속이다. 일각에선 가상화폐 투자자 스스로도 지하경제와 연계될 수 있는 요인을 사전에 끊어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아울러 주식처럼 기관이 분석한 토대 위에서 평가금액이 제시돼 화폐거래 시장을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상화폐를 잉태한 블록체인

가상화폐시장은 종잡을 수 없지만 이 시장을 구현하게 한 원천기술인 ‘블록체인(block chain)’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다. 거래 내역기록을 위해 개발된 블록체인은 흔히 ‘분산형 공공거래 장부’라고 칭한다. 장부 책임자가 별도 없고, 똑같은 거래 장부를 복사해 각자 가져가고, 새로 생긴 거래내역도 직접 장부에 적어 넣어 공유한다.

분산형 네트워크에서 신규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정보를 암호화시켜 블록(Block)으로 만들고, 이 블록을 기존 장부에 계속 연결(Chain)하는 방식이다. 이 블록이 이어지면 이제까지의 모든 거래 기록이 되는데, 이를 블록체인이라 한다.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참여자 간 신뢰를 바탕으로 분산된 장부 내용을 실시간 추적 및 감시 가능해 위·변조 자체가 어렵다. 강력한 보안성을 지니는 것이다.

가상화폐는 블록체인기술이 적용된 첫 상품일 뿐인데, 두 개의 개념을 동일시하는 인식도 있었다. 블록체인의 가장 큰 특징은 ‘탈중앙화’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한 거래는 서버나 중개인, 중앙집권적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참여자들 사이에서만 이뤄지는 P2P(Peer to Peer) 방식이다.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많을수록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블록체인은 전 세계인이 참여하도록 완전 오픈한 ‘퍼블릭 불록체인’과 특정 조직에 등록된 사람만 이용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나뉜다. 중간단계로 ‘컨소시엄 블록체인’이 있다. 정보 분산과 공유의 한계성 때문에 퍼블릭 블록체인이 향후 각방받을 것으로 점쳐진다.

지역의 한 금융전문가는 “국민기질상 단합이 잘되는 일본의 경우 가상화폐 시스템에서 빨리 다른 분야로 갈아탈 수 있다. 반면 정보독점 욕구가 강한 국내에선 활용 다양화 작업이 다소 더딜 수도 있다”고 했다. 다보스포럼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기술로 지목한 블록체인이 국내에서 꽃을 피우려면 먼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블록체인이 바꿔놓은 금융환경

은행권은 특히 블록체인 기술이 은행에서 쓰는 신분증인 ‘공인 인증서’의 공동 사용을 비롯해 해외송금 및 무역거래 시스템 도입 등에 요긴하게 쓰일 것으로 전망한다.

DGB대구은행 등 국내 은행·증권·보험사 50여 기관은 올해 ‘공인인증서’를 통합 공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일부 관련기관만 참가하는‘컨소시엄 블록체인’형태다. 이 프로젝트가 가동되면 특정 금융기관이 설사 해킹에 뚫려 거래내역이 위·변조된다해도 전체적으론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참여자 스스로가 네트워크를 통해 거래 장부를 실시간 검사하고, 잘못 적히거나 누락된 장부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가진 ‘올바른 장부’를 신속히 복사해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올바른 장부’란 참여자 가운데 과반수가 갖고 있는 데이터와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블록체인 내 일부 금융기관의 장부 내용이 외부의 힘으로 바뀐다해도 결과적으로 다수의 힘으로 무시되는 셈이다. 실제 해킹이 효과를 보려면 동시에 50여 금융기관 블록 중 과반수(25개 이상)를 동시에 위·변조시켜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힘들다. 블록체인기술을 적용하지 않을 경우 새 정보(거래내역)가 생길 때마다 누군가가 이 업무를 처리해야 해 비용 및 업무량 부담이 늘어난다. 해외송금도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다. 국내에서 미국에 송금을 할 경우 현지 은행 및 계좌는 물론 은행 지점까지 입력해야 한다. 자칫 해당 은행지점이 폐쇄된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을 적용되면 폐쇄된 지점 상황을 훤히 숙지한 상태에서 송금할 수 있다. 참여자 중 메일 폐쇄된 은행지점 목록을 실시간으로 올리고, 이를 모두 공유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해외송금 시 시간 및 비용단축은 금융기관의 공통 관심사다. 계약서 작성 때는 양측 당사자 서명 및 돈이 오간 증거가 네트워크에 남아 있어 사기 위험에서 안전할 수 있다.

아울러 은행은 고객 1인당 온누리 상품권 구매 및 일반 대출 관련 한도 상황을 실시간 체크할 수 있다. 현 단계에선 당일 저녁에 금융결제원에 거래내역이 전달되면 다음날 오전에야 한도초과 여부가 파악된다. 묻지마 가상화폐 논란의 그늘 속에서 양지(블록체인시대)로 언제쯤 전환될 지 지켜볼 일이다.

최수경기자 juston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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