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복사터 대형유적·유물 1천여점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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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종욱기자
  • 20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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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월대처럼 기단 위 건물 형태

경주 지역에선 처음으로 확인

십이지신상기단도 90년만에 모습

황복사지에서 나온 금동입불상 및 보살상. (성림문화재연구원 제공)
[경주] 신라 왕실사찰인 ‘황복사(皇福寺)’ 터에서 웅장하고 화려한 유적과 유물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은 지난해 8월부터 경주 낭산 일원(사적 제163호) 4천670㎡를 발굴해 대형 건물지, 십이지신상 건물지 등과 유물 1천여점을 찾아냈다고 31일 밝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황복사는 의상대사가 29세(654년·진덕여왕 8년)에 출가한 절이다. 1942년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 해체 당시 사리함 뚜껑에서 ‘종묘성령선원가람’(宗廟聖靈禪院伽藍·죽은 왕의 신위를 모신 종묘의 신성한 영령을 위해 세운 선원가람)이라는 명문이 나와 왕실사찰로 추정됐다. 연구원은 2016년 황복사지 삼층석탑 동쪽 부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효성왕(737∼742)을 위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완성 무덤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건물지, 회랑 터, 담장 터, 배수로, 도로, 연못 등 황복사의 건물 배치를 알려주는 유구(遺構·건물의 자취)가 확인됐다. 특히 돌로 기단을 쌓은 2호 건물지는 남북 길이가 57.5m, 동서 길이가 17.5m로 나타났다. 남쪽과 동쪽은 길이 150㎝, 높이 47㎝, 폭 50㎝ 내외의 잘 다듬은 장대석을 활용해 기단을 조성했다. 북쪽은 폭 20~100㎝의 자연석으로 기단을 만들었다. 북쪽 중앙부에서는 돌계단도 발견됐다. 또 건물 내부에 회랑을 둘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2호 건물지 서쪽에 맞닿은 1호 건물지에는 십이지신상 4점을 사용한 기단이 발굴됐다. 십이지신상은 평상복 차림의 묘(卯·토끼), 사(巳·뱀), 오(午·말), 미(未·양)로, 일제강점기인 1928년 노세 우시조(1889∼1954)가 발굴해 사진으로 남겼다. 이후 다시 땅에 묻혔다가 이번에 9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또 금동입불상, 보살입상, 신장상(神將像·부처를 수호하는 신장을 새긴 조각상), 치미(장식기와), 토기가 발견됐다.

조사단은 이러한 유물을 근거로 황복사에 상당히 격조 높은 건축물이 있었고,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사찰이 유지됐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건물 배치와 도로를 봤을 때 낭산 동쪽에도 방리제(坊里制·바둑판 모양 설계)가 적용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희철 성림문화재연구원 조사부장은 “2호 건물지는 종묘의 월대처럼 기단을 놓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 이러한 형태의 건물지는 경주지역에서 확인된 바가 없다”면서 “종묘와 같은 특수한 용도의 건물이거나 황복사의 중심 건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연구원은 올해 봄부터 이번 조사 지역과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이 구역을 발굴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가 나오면 황복사 건물지의 성격과 규모가 더 자세히 규명될 것으로 기대된다.

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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