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오 인장 이야기 .5 끝] 석재 진면목 드러내는 중요 유품…기념관 조성 시급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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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31 08:11  |  수정 2018-01-31 09:40  |  발행일 2018-01-31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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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서병오기념사업회가 기증받은 인장 중 왼쪽 위부터 아래방향으로 ‘우연욕서(偶然欲書)’‘사무사(思無邪)’‘도불원인(道不遠人)’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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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나 그림을 완성한 뒤 작품에 자신의 아호나 이름, 장소와 날짜 등을 쓰고 인장을 찍는 일 또는 그 인장이나 인장이 찍힌 것을 낙관(落款)이라 한다. 낙관은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이며, 낙성관지는 중국의 옛 동기(銅器) 등에 새긴 글자 중에서 음각자(陰刻字)를 ‘관(款)’, 양각자(陽刻字)를 ‘지(識)’라고 하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낙관은 자필의 증거 또는 작품을 완성하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서화작품에 사용되는 인장은 위치나 용도에 따라 성명인, 아호인, 두인, 유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성명인은 음각으로 새기고, 아호인은 양각으로 새긴다. 두인(頭印)과 유인(遊印)은 음각과 양각 모두 가능하며, 두인은 일반적으로 작품 오른쪽 머리 부분에 찍는다. 유인은 적절한 공간에 찍는데, 작품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잡는 용도 등으로 사용한다.

이번에 기증받은 서병오 인장 중 두인으로 ‘사무사(思無邪)’ ‘수이강(壽而康)’이 있고, 유인으로는 ‘도불원인(道不遠人)’ ‘우연욕서(偶然欲書)’ ‘반구제기(反求諸己)’가 있다.

기증받은 석재 인장에 포함
思無邪 頭印 작품에 최다사용

다양한 현창 사업 펼치려면
작품·자료의 수집·연구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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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오가 두인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 ‘사무사’ 인장을 사용한 묵란도(부분).

◆가장 많이 사용한 ‘사무사(思無邪)’ 인장도 있어

서병오의 서화 작품을 보면 두인으로는 ‘사무사’를 가장 많이 사용한 듯하다. 그리고 작품에 주로 사용한 ‘사무사’ 인장은 이번에 기증받은 ‘사무사’ 인장이다. 그다음으로는 ‘우연욕서’ 두인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 두인은 이번에 기증받은 인장에는 없다. ‘사무사’는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는 의미다. 공자가 ‘논어’의 ‘위정(爲政)’편에서 ‘시경 삼백 편은 한마디로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詩三百 一言而蔽之曰 思無邪)’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유인 ‘도불원인’은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는 의미다. 즉 도는 사람들의 일상 삶에 있다는 말로 해석해도 될 것이다.

이 말도 공자가 말한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은데 사람들이 도를 행하면서 사람에게서 멀어지니 이렇다면 도라고 할 수 없다(子曰 道不遠人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란 구절에서 유래한다.

‘반구제기’는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라는 뜻이다.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때 남의 탓을 하지 않고 그 일이 잘못된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 고쳐 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임금의 아들 백계(伯啓)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맹자’에도 ‘행하여도 얻지 못하거든 자기 자신에게서 잘못을 구할 것이니(行有不得者皆反求諸己), 자신의 몸이 바르면 천하가 돌아올 것이다(基身正而天下歸之)’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유사한 표현으로 ‘논어’의 ‘위령공’편에 ‘군자는 허물을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허물을 남에게서 구한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라는 구절이 있다.

‘우연욕서’는 ‘문득 쓰고 싶어 쓴다’는 의미다. 이번에 기증받은 우연욕서 인장을 사용한 작품은 찾아볼 수 없었고, ‘반구제기’ 인장은 만년의 모란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증 인장 등 소장·전시할 기념관 건립 절실

이번에 석재서병오기념사업회가 기증받은 인장은 서병오가 만년에 주로 사용한 것이 중심이 되나 사용 사례를 찾기 어려운 인장도 있고, 사용시기가 특정한 인장도 있는 등 다양하다. 초기에 사용한 유인 ‘남창송운(南窓松雲)’ ‘휴금대주(携琴載酒)’ ‘옥호빙심(玉壺氷心)’ 등 작품에 사용한 인장 중 없는 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각의 대가 김태석이 새긴 ‘서씨병오지인(徐氏丙五之印)’ ‘석재칠십이후작(石齋七十以後作)’ ‘수이강(壽而康)’을 비롯해 서병오가 한때 사용했던 이름과 아호를 새긴 ‘서훈(徐薰)’과 ‘청전(靑篆)’, 두인 ‘사무사(思無邪)’ 등 하나같이 소중한 서병오 관련 유품들이다. 잘 관리되면서 연구 자료 등으로 활용되어 서병오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현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자료들은 서병오의 작품과 함께 빨리 많이 확보하는 것이 대구가 낳은 보석 같은 존재인 서병오를 제대로 현창해 대구를 빛나게 하는 데 가장 절실한 일이다. 2014년에는 배경원씨가 서병오의 묵란 작품을 기증하기도 했는데, 이 같은 일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병오의 작품과 자료를 수집·연구하며 다양한 현창사업을 펼칠 석재기념관을 대구에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서병오 관련 자료나 작품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대구의 보물을 계속 흙더미 속에 방치해 그 가치를 잃게 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이 서병오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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