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울산 대왕암 공원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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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6   |  발행일 2018-01-26 제36면   |  수정 2018-01-26
문무왕을 따라 龍神이 된 왕비의 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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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의 왕비가 용신이 되어 잠겨 있다는 울산 대왕암. 다리와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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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암 공원 입구 미르놀이터의 용과 빼곡히 들어선 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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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암 송림. 해송 1만5천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겨우내 숲 바닥은 푸른 꽃무릇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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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인 울기등대 옛 등탑(앞)과 신 등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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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수로. 용이 해중으로 잠겨들었다는 곳이다.

검은 눈이 재빨리 스캔을 끝내면 가느다란 바가 입장을 허락한다. 무인주차시스템은 쉬이 편해지지 않는다. 매번 치켜 올려진 바가 정수리를 내려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주차장이 공항처럼 넓다. 한쪽은 으리으리한 상가다. 프랜차이즈 카페가 많고, 음식점과 편의점 등이 들어서 있다. 상가 앞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하다. 벽에 ‘상가주차장 상가이용고객 무료’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주차비 문제로 관과 상가 번영회 사이에 갈등이 깊다는 이야기가 있다. 너른 공간, 매끈한 길, 깨끗하고 예쁜 건물, 밝은 얼굴의 사람들, 이 모든 것은 안락하고 만족스러운 삶의 표지들이지만 후방에 드리운 그림자의 명도는 알 도리가 없다.

◆1만5천 그루 해송의 숲

해송의 숲은 벌써부터 보인다. 그 크고 푸른 우듬지는 지상의 모든 것들 위에 솟아 있다. 숲 입구에 황금빛 거대한 용이 꿈틀댄다. 대왕암의 전설을 모티브로 만든 ‘미르놀이터’다. 미끄럼틀과 흔들의자 등 몇몇 놀이기구가 있다. 엄마들은 아이들을 번쩍 들어 올려 용을 보여주고 만져보게 한다. 차가운, 겨울 용. 아이의 눈이 용의 눈만큼 커진다.

숲길이 있고, 흙길이 있고, 고래등껍질 같은 판석을 깐 길이 있다. 숲길로 들어선다. 대단한 숲이다. 수령 100년이 넘는 아름드리 소나무 1만5천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말을 기르던 목장이었다고 한다. 러·일전쟁 이후 해군부대가 주둔하면서 나무를 심어 숲이 되었다. 솔 그림자 누운 땅이 녹색이다. 푸릇푸릇한 꽃무릇 세상이다. 9월 붉은 꽃을 피우는 꽃무릇은 꽃이 진 후 진한 녹색의 잎이 나와 다음해 5월에 사라진다. 한겨울 동안 푸름을 유지하는 비결이 뭘까. 숲이 이리도 무성한데.

숲을 빠져나와 잠시 흙길을 걷는다. 가로수는 벚나무와 동백나무다. 붉은 동백꽃이 드문드문 피어 있다. 다가서 바라보면 그 강인한 얼굴을 활짝 내민다. 바닥에 떨어진 꽃들도 처연하지 않다. 햇빛이 풍부한 길이다. 바람은, 숲이 막아주는 것일 게다. 길가 벤치마다 노인들이 앉아 있다. 한껏 햇빛에 젖은, 여유롭고 우아한 모습들이다.

1만5천그루 松林 지나 팔각형 울기등대
112년前 동해안 첫 등대…現 문학갤러리
옛 등대 뒤편엔 1987년 세워진 새 등대
참고래턱뼈 사이 지나자 바다와 대왕암
용이 잠겼다는 전설의 용추암 등 절경


◆울산의 氣, 울기등대

송림이 끝날 무렵 팔각형의 하얀 등대가 보인다. 1906년 동해안 최초로 세워진 울기등대다. 러·일전쟁 때 일제가 세운 것으로 처음에는 ‘울기등간(蔚埼燈干)’이라 했다. ‘울산의 끝에 있는 등불 방패’라는 뜻처럼 군사적인 목적에서였다. 등대의 불빛은 매일 밤 일몰에서 일출까지 약 1초 간격으로 반짝 거렸고 그 빛은 약 18해리(약 33.3㎞)까지 나아갔다고 한다. 지금 울기등대는 모니터를 통해 시를 읽어볼 수 있는 문학 갤러리다. “나를 가르치는 건 / 언제나 / 시간. /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김남조의 시 ‘겨울바다’를 읽어 본다.

울기등대 뒤편에는 조금 더 키 큰 신등대가 있다. 해송들이 자라면서 울기등대를 감춰버리자 1987년에 새로 세운 등대다. 등대 일대는 문학 탐방로, 노인 조형물이 앉아 있는 문학 전망대, 야외공연장 등으로 꾸며져 있고 주변 건물들은 4D 입체영화관, 선박조종체험관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울기(蔚埼)는 울산의 끝이다. 그 뜻이 순정하다 할지라도 그 주체와 시대는 좀체 잊기 힘든 기억이었을까. 2006년 등대건립 100주년이 되었을 때 울산 사람들은 등대의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 등대는 울기(蔚氣), 울산의 기다.

◆울산 대왕암

등대에서 나오면 몇 그루 해송들 사이로 바다와 바위들이 얼핏 보인다. 바다로 가는 마지막 문은 고래턱뼈다. 커다란 고래턱뼈가 장승처럼 서 있다. 1984년 군산 어청도 근해에서 포획한 참고래의 턱뼈로 8년 동안 바다 속에서 기름기를 빼낸 후 이곳에 설치했다고 한다. 고래 턱뼈 사이를 피노키오처럼 지나면 바다다. “와! 여기 너무 좋다!” “엄마, 물이 너무 맑고 파래.” “어머나!” 여기저기서 끝없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탁 트인 해안절벽과 거대한 진홍빛 바윗덩어리들, 그리고 코발트빛의 바다. 절벽 아래 바닷가 자갈밭에는 작은 탁자와 의자들이 가지런히 앉아 있다. 해녀들이 해산물을 파는 곳이다. 오늘 해녀들은 보이지 않는다. 경주에도 대왕암이 있다. 동해구 문무대왕릉이다. 울산의 대왕암은 문무왕의 왕비가 용신이 되어 잠겨 있다는 바위다. 왕과 왕비 모두가 용이 되어 동해를 지킨다.

무지개다리인 대왕교를 건넌다. 거석들 사이 ‘용추수로’의 물이 무섭도록 짙다. 용추수로는 용이 해중으로 잠겨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길은 대왕암 위를 굼실굼실 용이 나는 듯 이어진다. 탕건바위, 자살바위, 남근바위, 처녀봉, 다릿돌, 할미바위 등 바위들은 저마다 이름을 가졌지만 무엇이 무엇인지 가늠만 한다. 사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마음은 텅 빈 채 경외의 시선을 보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사람들의 탄성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모든 탄성들은 목구멍을 막고 머리를 압박한다.

대왕암 용등에 오른다. 대왕암 동편 끝 바위는 용추암이다. 용이 잠겼다는 바위. 그 밑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고도 전해진다. 하늘에 떠있는 듯하다. 고요하고, 바람은 맵다. 김남조의 시는 이렇게 끝난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 인고(忍苦)의 물이 / 수심(水深)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으로 가다 언양 분기점에서 울산선을 타고 울산IC에서 내린다. 울산 이정표를 따라 시내로 진입, 신복로터리에서 좌회전해 삼호교를 건너 우회전, 태화강변을 따라 방어진 방향으로 간다. 방어진순환도로를 타고 계속 가다 등대네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된다. 방어진 슬도에서 해안산책로를 따라 대왕암으로 갈 수도 있다. 대왕암 공원 주차료는 30분 당 500원. 상가주차장에 차를 대고 상가를 이용할 경우 무료다. 울기등대는 동절기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하며 매주 월요일 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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