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대구 .13] 신천 공룡 발자국 화석

  • 박관영
  • |
  • 입력 2018-01-18   |  발행일 2018-01-18 제13면   |  수정 2018-01-26
상상해보세요 신천을 느릿느릿 걷는 거대한 공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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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교와 동신교 사이의 신천 바닥에는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자리하고 있다. 공룡 발자국 화석은 신천에 수중보가 들어서면서 수면 아래로 잠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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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에 물이 빠졌을 때 드러난 공룡 발자국 화석의 모습. 신천을 활보하던 공룡은 4개의 발을 가진 용각류, 즉 목이 길고 몸집이 아주 큰 초식 공룡이었다.

1994년 9월26일 오전 6시. 대구 동구 주민 한상근씨는 신천변을 달리고 있었다. 그해 여름은 대구기상청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무더웠고 비는 드물었으며 신천은 군데군데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수성교에서 도청 방향으로 내려오다 문득 속도를 늦추고 강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움푹 파인 구덩이들의 행렬을 발견한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지만, 그는 첫눈에 직감했다. ‘아, 저것은 공룡 발자국!’

대구 첫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
1994년 주민 한상근씨가 제보
동신교서 수성교방향 약 300m
2003년 조사 57개 발자국 확인
신천 수중보 공사로 수면 상승
지금은 물속에 잠겨 볼 수 없어


#1. 신천의 공룡 발자국

이튿날 경북대 과학교육학부 양승영 교수가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룡 화석을 발견한 고생물 학자였다. 그는 움푹 파인 구덩이들을 꼼꼼히 살핀 후 말했다. “백악기 시절의 공룡 발자국이 틀림없다.” 신천대로 개발 시 신천의 지표면 조사연구와 정밀 탐사 때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는 대구 최초의 공룡 발자국 화석이었으며, 도심 한가운데서 공룡 발자국이 확인된 전 세계적으로 드문 사건이었다.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곳은 동신교를 기준으로 수성교 방향 약 300m 지점이다. 먼저 강바닥에 드러나 있는 노두를 중심으로 간단한 현장 지질조사가 실시되었다. 공룡 발자국은 북동쪽으로 길고 남동쪽으로 약간 경사진 퇴적암 지층의 회색 이암층에 화석으로 남아 있었다. 아래에는 적색의 이암이 퇴적되어 있었고 위에는 암회색의 셰일이 덮여 있었다. 이암은 미세한 점토 입자들이 퇴적된 것, 셰일은 이암 중에서 층리가 얇게 관찰되는 암석을 말한다. 주변에는 당시의 건조한 기후가 남긴 건열이 많이 관찰되었지만 물결자국인 연흔은 보이지 않았다. 이는 당시 이 지역이 수심이 얕고, 퇴적층이 가끔 수면 위로 노출되어 건조되었으며, 그 위를 공룡들이 걸어 다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2003년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는 층 위를 덮고 있는 퇴적물을 걷어내는 작업이 조심스럽게 이루어졌다. 폭 3m, 길이 약 25m의 지층면에 무려 57개의 공룡 발자국이 확인되었다. 일부 발자국은 물에 잠겨 완전한 모양이 드러나지 않았고 최초의 발견 이후 발자국 가장자리의 침식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었다. 내부 역시 퇴적물이 쌓인 채로 침식을 받아 형태가 변형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룡의 발자국은 회색의 바위 위에 또렷했다. “우리 어릴 때 피라미, 미꾸라지를 잡아 넣어두었던 구덩이였는데.” 구경꾼들은 아쉬운 탄성을 보냈다.

더욱 자세한 연구를 위해 본뜨기 작업이 이어졌다. 신천의 공룡 발자국은 작업실로 옮겨져 다양하게 조사되었다. 발자국은 매우 밀도가 높았고 앞발과 뒷발이 모두 있었다. 뒷발은 역사다리꼴, 앞발은 반달모양이었으며 발자국의 폭은 22~60㎝, 길이는 20~56㎝, 깊이는 1~17㎝로 다양했다. 신천을 활보하던 공룡은 4개의 발을 가진 용각류, 즉 목이 길고 몸집이 아주 큰 초식 공룡이었다. 놀랍게도 한 개의 뒷발자국에서 5개의 발가락 흔적이 뚜렷했다. 용각류의 발자국에서 발가락이 보존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발자국의 간격 역시 다양했다. 각 발자국은 여러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몇몇 발자국들은 특징적인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 중 10시 방향과 7시 방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신천의 공룡들은 그 긴 목을 빼어들고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2. 백악기의 대구

약 1억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경상도 일대는 분지형 저지대였다. 낮은 곳으로 물이 흘러들어 점차 드넓은 호수가 만들어졌고 주변으로는 많은 못과 늪지대가 생겨났다. 직경이 150㎞나 되는 호수는 경상도 전역은 물론 대한 해협과 일본 본토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규모였다고 한다. 이때의 경상도 일대 저지대를 경상분지, 호수를 경상호수라 한다.

저지대를 자유롭게 흐르던 물줄기들은 잘게 부서진 암석들을 껴안고 호수로 흘러 들어갔다. 작은 암석들은 호수 아래에 쌓이고 굳어져 지층이 되었다. 그렇게 기존의 암석이 부서져 가루가 되고 그것이 물의 흐름에 의해 이동해 쌓인 후 굳어진 것을 쇄설성 퇴적암이라 한다. 이후 퇴적의 범위는 점점 확대되었고 그러한 사이 몇 번의 화산활동이 있었다. 분출된 화산재와 용암이 퇴적층 위를 덮어 화산암이 되기도 했고, 마그마가 퇴적암 사이로 흘러들어 심성암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쇄설성 퇴적암과 화산암, 심성암으로 구성된 백악기 퇴적층을 경상누층군이라 한다. 그 두께가 10㎞ 정도라 하니 얼마나 오랜 시간의 퇴적인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경상누층군으로 이루어진 경상분지, 그 한가운데에 바로 대구가 있었다. 날씨는 따뜻했고 초식 공룡의 먹이가 되는 나무고사리, 소철, 연한 순의 송백류 등이 풍부했다. 공룡과 다양한 동물들은 물과 먹이를 찾아 습지와 늪과 수풀로 우거진 호수를 활보했다. 육중한 걸음은 발자국을 남겼고, 발자국이 사라지기 전에 건조한 기후를 맞았으며, 또 다른 퇴적물이 그 위를 덮었다.

지구상에 출현한 생물 가운데 가장 거대한 생물인 공룡은 지금으로부터 약 2억2천800만년 전인 중생대 초에 처음 등장하여 6천500만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말에 모두 사라졌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공룡이 출현한 것은 백악기 전기인 약 1억2천만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의 공룡은 마지막 공룡시대를 살았던 셈이다. 약 7천만년 전 화산폭발이 일어나 앞산이 생겼다. 그리고 약 6천500만년 전 마그마가 지층의 약한 부분을 뚫고 들어가 서서히 식으면서 팔공산이 생겼다. 신천의 공룡은 앞산을 봤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지구의 마지막 공룡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팔공산일지도 모른다.



#3. 지금은 물 속에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는 100여 곳. 그 수만 해도 1만개가 넘는다. 이 중 대구의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는 10여 곳으로 시청에서부터 평균 12㎞ 내에 위치한다. 신천에서 처음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이후 매호천, 욱수천 등 하천지대를 비롯해 앞산 고산골, 북구 노곡동 부엉덤이, 동구 지묘동, 달서구 신당동, 동구 신서동 등지의 계곡이나 배수로에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됐다. 250만명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 도심에서 이처럼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가 많이 발견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신천의 공룡 발자국 화석은 지금 물에 잠겨 있다. 신천을 정화하는 공사를 하면서 수중보를 만드는 바람에 물속에 잠겨버린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신천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정화된 물을 신천상류 상동에 방류하기 위해 신천 바닥을 옛 경북도청 앞까지 파 올라오던 수로 공사가 공룡 발자국 발견을 계기로 설계가 변경되어 보전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학계에서는 보를 없애거나 위치를 옮겨 시민들이 실제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천연자원의 가치를 살리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물이 줄어들어야, 우리는 신천의 공룡 발자국을 볼 수 있다. 지금도 퇴적과 침식은 진행 중이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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