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평창올림픽과 남북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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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6   |  발행일 2018-01-16 제29면   |  수정 2018-01-16
[기고] 평창올림픽과 남북의 평화
이범주 (한의사)

난 평창올림픽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가계부채, 기업부채, 국가부채가 이미 산더미인데 또 거액의 빚을 내서 국제적인 잔치를 벌인다는 것이 마뜩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키경기장을 만들겠다고 거의 마지막으로 남아있다는 남한 최후의 원시림 가리왕산까지 망가뜨린다는 소식까지 듣고서는 차라리 올림픽을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연유로 올림픽에 심드렁한 나를 벌떡 일어나게 하며 관심을 갖게 한 놀라운 사건이 최근에 일어났다.

2018년 신년사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바란다면서 대규모의 대표단을 보낼 것을 제안했고 실제 지난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 고위급 실무회담을 가졌다. 남북 간에 실무적인 이야기는 대체로 잘 진행된 것으로 안다. 북이 대규모의 고위급 대표단, 선수단, 참관단, 예술단, 기자단, 응원단을 보내고 이어 고위급회담, 군사회담까지 진행할 것으로 합의한 것이다. 참으로 잘 된 일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북의 형제들이 손님으로 온다. 서로 냉랭하게 지낸 이 오랜 세월의 끝에 드디어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어올 것인가. 설렌다.

우리의 절실한 바람과는 달리 평화로의 길은 실로 간단치 않다. 한반도는 1945년 분단된 이래로 그 오랜 세월 동안 세계적인 모순이 집중, 중첩돼 갈등을 겪고 있는 그 중심이다. 우리 내부의 각 정치세력도 이 국면에 대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낼 것이다. 분단 한반도에 얽혀있는 각 나라의 이해관계 또한 상이하고 복잡하다. 이런 모든 것을 무시하기 어려운 문재인 정부가 이렇듯 상이한 입장들을 조율하면서 최상의 방향을 잡아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때 생각나는 것은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다른 무엇도 민족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 어떤 가치도 민족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난 이 말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로야 남북 간의 대화와 화해를 바란다고 하지만 미국에 한반도의 긴장과 분단은 꽤 즐길 만한 것이다. 분단에서 오는 긴장을 활용해 한국 땅을 군사기지로 이용할 수 있고, 막대한 금액의 무기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보더라도 한국처럼 미국에 거의 무료로 군사기지를 제공하는 곳은 없다. 게다가 미군주둔분담금까지 매년 대략 1조원을 내고 있으니 미국에 분단된 한국은 그야말로 화수분인 셈이다. 일본이나 중국도 통일이 돼 강성해진 단일 코리아를 원치는 않을 터이다. 결국 이 분단 상황에서 유일하게 고통받는 이는 바로 우리 민족이다. 그러므로 민족적 가치를 우선으로 추구하면서 일단 남북 간의 적대적 대결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통일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분단 상황에서 우리가 추구할 목표이자 최상의 가치가 돼야 한다.

이제 북한은 응원단과 예술단을 보낼 것이다. 난 2003년도에 내려왔던 북한의 여성응원단을 기억한다. 우리의 어린 누이같이 아리땁고 고운 여성들이 질서있게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총각과도 같이 설렜다. 하지만 그들의 용모에 끌린 게 아니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내 혈육을 보는 듯해서 가슴이 뜨거웠고 지금까지 몰랐던 내 반쪽을 보는 듯 반가워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혈육의 끌림이란 이런 것이다.

먼저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는 북한 대표단을 따뜻한 마음을 갖고 정성으로 대해주자. 그간의 어색함을 풀도록 노력하자. 더 나아가 다양한 교류로 확대될 수 있도록 해보자.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핵을 문제 삼아 적대시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내심 분단 상황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미국과 일본의 보이지 않는 간섭 또한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민족 그 이상 가는 가치는 없다”는 말을 상기하며 어렵사리 갖게 된 이 평화와 교류의 불씨를 애지중지 잘 살리자.

그래서 머지않아 정다운 벗들과 더불어 남쪽 풍광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저 광활한 개마고원을 구경하고, 두만강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강가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날이 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한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그럴 수만 있다면…정말로 좋지 아니한가. 이범주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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