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대구 .10] 동화천변 연경서원 <하> 서원이 있던 자리 그리고 화암(畵巖)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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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9   |  발행일 2018-01-09 제14면   |  수정 2018-01-26
‘그림으로 그리기 어려운’절경 화암은 기억한다…절벽 아래 깊고 맑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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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북구 연경동과 동구 지묘동의 경계지점에 30m의 높이의 바위벼랑인 화암이 자리하고 있다. 퇴계 이황은 ‘그림으로도 그리기 어려운 빼어남’이라고 화암의 절경을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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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 아래에서 바라본 대원사의 모습. 학계는 연경서원의 위치를 대원사 일대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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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서원은 지금 없다. 정확한 위치도 알 수 없다. 가늠하는 땅에서 찾아낸 기와편이 그의 것이라 추정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 서원 땅의 풍취를 느낄 수 있고 대략의 지도를 그려볼 수도 있다. 연경서원을 거쳐간 수많은 유현들은 서원에 대한 다수의 글을 남겼다. 스승 퇴계 이황은 주요 서원을 선정해 읊은 ‘십서원시(十書院詩)’에 연경서원에 대한 엄정하고도 유려한 시를 남겼고, 매암 이숙량은 상세하면서도 풍부한 긴 기문을 써내려가면서 서원을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전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1. 서원이 있던 자리

연경서원의 기문은 전한다.

‘맑은 시내 한 줄기가 그 남쪽으로 지나는데, 졸졸 굽어 흐르다가 산을 따라 서쪽으로 가서 10리를 못 미쳐 금호강에 이른다. 그 상류에는 2리쯤에 왕산(王山)이 있어 씩씩하게 도사리거나 우뚝하게 솟아있는데, 아름다운 기운이 빽빽이 왕산 줄기를 감싸고 있다. 남쪽에는 층층이 어지럽게 늘어선 산줄기와 봉우리들이 용이 나는 듯 봉황이 춤추는 듯 있으니, 꿈틀거리며 뒤섞여 하나가 된 산이 서원의 동남쪽 전망이다. 서원의 북쪽에 있는 산은 성도산(成道山)이다. 산봉우리가 나지막하고 골짜기가 고요하며 흰 돌과 푸른 솔이 숨었다 나타났다 하며 서쪽으로 이어지다가, 문득 큰 바위가 있어 천 길이나 깎아지른 듯하니 이것이 화암(畵巖)이며, 서원의 서쪽을 지켜주는 것이다.’

서원의 서쪽을 지켜주는 것, 화암. 화암은 금호강과 동화천의 두물머리에서 동화천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조계종 대원사 초입 왼쪽에 나타나는 거대한 바위벼랑이다. 벼랑의 높이는 약 30m로 수직의 단애 위에 또 하나의 거대한 바위가 포개져 있는 형상이다. 현재는 대구 북구 연경동과 동구 지묘동의 경계지점에 있으며 행정구역상 지묘동에 속한다.


북구 연경·동구 지묘 경계 위치
단애 위에 바위 포개진 모습
19세기 사람 채준도는 화암을
문암9곡 중 제1곡으로 설정

연경서원 통강록 등 유물 발견
중건추진委가 3년 내 복원계획



연경서원 기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붉고 푸른 절벽이 우뚝하게 솟아서 기이한 형상이 절로 그림을 이루고 있으니 화암이란 이름을 얻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아래에 푸른 연못이 있어 깊고도 맑으니 노니는 물고기를 헤아릴 수 있다. 이곳은 서원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곧 화암의 동쪽, 연못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 40여 칸의 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땅일 게다.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옛 문헌에 나오는 자료와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동화천이 흐르는 대구 동구 지묘동 대원사 일대에 연경서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대원사 지척에 석축이 있는데, 석축 인근에 연경서원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기와편이 많이 발굴된다. 그 일대가 연경서원이 있던 자리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대원사 동쪽에는 인천채씨 집성촌인 ‘서원연경’마을이 있었다. 마을 안길의 이름은 ‘서원길’이었다. 이러한 이름의 근원이 연경서원에 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2. 그림 같은 바위, 화암

서원 완공을 앞두고 이숙량은 스승인 퇴계에게 기문을 부탁했다. 퇴계는 병으로 사양하며 제자의 글을 때때로 꺼내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1567년 퇴계는 ‘그보다 더 낫게 지을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는 칭찬과 함께 이숙량의 글을 기문으로 판각할 것과 서원의 경중(輕重)은 제군들에게 달려있다는 준엄한 내용의 기후(記後)를 보내왔다. 그와 함께 보낸 것이 십서원시 중의 연경서원 시다.

‘화암의 빼어난 모습 그림으로 그리기 어려운데(畵巖形勝畵難成)/ 서원을 건립하여 함께 모여 육경을 공부하네(立院相招誦六經)/ 이를 좇아 도술을 밝혔다는 소식 듣기를 기다리노니(從此佇聞明道術)/ 몽매한 뭇사람을 불러 일으켜 깨우침이 없겠는가(可無呼寐得群醒).’

그림 같은 바위여서 화암이다. 퇴계는 그림으로도 그리기 어려운 빼어남이라 했다. 영조 때 편찬한 대구읍지에는 ‘화암은 대구부(府)의 북쪽으로 15리쯤에 있으며 붉은 벼랑과 푸른 암벽이 높이 솟아 가파른 천 길 낭떠러지다. 기괴한 형상이 화폭을 펼쳐놓은 듯하다’라고 되어있다. 화암의 시간은 오래 되었다. 약 1억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 이래 아득한 세월이다. 화암의 시간은 연경서원의 시간을 안고 있다. 서사원도 연경서원의 애련당 중건의 감격을 화암과 함께했다. 전경창을 위한 곽재겸의 제문에도 화암은 어김없다. ‘화암의 봄이 깊고 옥계(玉溪)의 가을이 깊어갈 때 학도들이 좇아 유하며 읊고 즐거워했네.’ 그들은 언제나 함께였다.

19세기 사람 채준도는 동화천에 문암구곡을 설정하면서 제1곡으로 화암을 노래했다.

‘봄물이 불어 배를 띄울 만하니/ 백 척의 기암 그림자 맑은 물에 비치네/ 도옹이 떠난 후에 시를 읊는 사람 없으니/ 오랜 세월 빼어난 경치 푸른 안개에 둘려있네.’

연경서원의 철폐 후가 아닐까 싶다. 연경서원이 철폐된 이후 화암은 잊혀갔다. 한동안은 연경동 덤바위라 불리며 암벽 등반 훈련장이 되기도 했다. 동화천 제방과 2차로 도로를 건설할 때는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화암의 유래를 아는 인천채씨 채익수씨와 동화사 스님들이 화암이 있는 용두산을 매입해 화를 막았다. 대원사가 들어서고 난 뒤 화암은 무당들의 굿당이 되기도 했다.

#3. 연경서원의 복원

2006년 연경지구 148만5천㎡(45만평)이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되었다. 서원연경마을 일대를 모두 포함하는 구역이다. 대구지역 24개 문중대표로 구성된 구연회를 중심으로 연경서원 중건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연경서원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렸고 중건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지금의 유림들의 노력이 잇따랐다.

2012년 연경서원의 학적부 격인 통강록(通講錄)이 발견되었다. 경주최씨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 선생의 종택 숭모각에 소장돼 있는 것을 400여년 만에 발굴한 것이다. 통강록에는 1605년에서 1613년까지 대구지역을 비롯한 인근 유림들이 이 서원에서 강학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학생 명단, 교육과목, 출결, 평가 등이 기록된 오늘날의 종합적인 학적부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통강록 중에서 가장 완벽한 자료로 평가된다.

2016년에는 영천이씨 이병구가 조상 대대로 보관하던 연경서원 기문편액 2개를 공개했다. 1613년 연경서원 사당을 건립할 때 이숙량의 기문과 이황의 발문을 편액으로 제작한 것이다. 소나무로 만든 편액은 가로 220㎝, 세로 38㎝ 크기로, 퇴계의 글은 판윤 김상용이, 매암의 글은 낙재 서사원이 각각 써 음각했다. 이 역시 400여 년 만이다.

대구 최초의 서원 연경서원이 복원될 계획이다. 복원 예정지는 연경 공공택지개발지구 내 근린공원 1부지로 예정되어 있다. 연경서원 중건추진위는 서원 자체의 교육기능을 되살리고 성리학의 상징적 공간과 경관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경서원 유물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통강록과 기문 편액은 물론 대구부사 이상진이 쓴 이건기 편액, 강학 등에 참여한 분들의 문집, 문적 등 통강에 관련된 자료, 연경서원의 연혁 및 대구유학의 학맥연원도 등 연경서원에 관련된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었다. 이는 앞으로 중건될 연경서원의 모습을 확인하는 뜻깊은 행사였다. 복원계획의 수립은 2020년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처음에 그려 보았던 화암의 동쪽, 동화천이 남쪽에 흐르는 서원의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연경서원의 인문학적 가치를, 서원이 있던 자리를, 알고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도움말=전영권 대구가톨릭대 교수
참고=대구읍지, 구본욱의 저서‘임하 정사철과 낙애 정광천 선생’

공동기획 : 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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