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산청 생초면 어서리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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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5   |  발행일 2018-01-05 제36면   |  수정 2018-01-05
언덕 고분군과 조각상들…마을 굽어보며 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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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강변 태봉산 남쪽자락 구릉지에 조성되어 있는 생초국제조각공원. 왼쪽 기와는 목아 박찬수전수관,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지붕은 산청박물관이다.

강은 지역마다 제 나름의 이름을 가지고 흐른다. 함양의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강은 산청 생초(生草)에서부터 경호강(鏡湖江)이 된다. 거울 같고 호수 같은 경호강은 남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손꼽힌다. 산청의 북쪽에서 태봉산(胎峰山)이 남쪽으로 발을 뻗어 젖을 듯 말 듯 경호강을 희롱하는 자리에 생초면 소재지인 어서리(於西里)가 있다. 거기 강과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이 어서와 하고 조근조근 부른다. 갈아 먹을 땅이 15%도 되지 않다는데,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왔다는데, 오래 터전을 이어온 것은 역시 산하(山河)의 덕일까.

‘남강의 가장 아름다운 구간’ 경호강변
산청의 생초면소재지인 어서리 언덕
생초국제조각공원엔 27점의 현대조각

입구·통로가 있는 선사 고분 100여基
전통 목조각 맥 잇는 목아 박찬수전수관
출토 가야유물 모조 전시된 산청박물관



◆강과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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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국제조각공원에는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의 작품 27점이 언덕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태봉산 남쪽 자락 구릉지. 그래, 발등이라 하면 좋겠다. 얇은 피부 위로 가느다란 골격이 얕게 드러난 발등 말이다. 골격과 실핏줄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져 있고 겨울잠에 든 꽃잔디가 전체를 뒤덮어 발등은 시리지 않다. 바삭거리는 겨울 위에는 조각품들이 서있다. 27점의 현대 조각품들이다. 이들은 1999년, 2003년, 2005년 ‘산청국제현대조각심포지엄’에 참여했던 세계 조각가들의 작품이다. 언덕은 생초국제조각공원이다.

낮달인가. 혀 위에서 사르르 녹던 성체 빵인가. 누군가는 위성 안테나를 닮았다고 했다. 이탈리아 작가 마우로 스타치올리의 작품 ‘산청03-천지인’이다. 하늘과 땅과 인간은 제 각각이면서 하나라는 것, 영원한 환으로서 독립성과 일체성을 획득한다는, 그런 뜻일까? 두 팔을 날개처럼 뻗은 조각상은 이갑열의 작품 ‘인간의 길’이다. 활공의 자유와 바람의 저항과 예수의 고난과 하강의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인간은 참 복잡하다.

저기 강을 향해 서 있는 ‘자화상-그림자’는 박찬갑의 작품이다. 산청 사람인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초대전을 가진 중견작가다. 그는 폐교된 고읍초등학교에 창작스튜디오를 열어 작업하면서 이 조각공원을 만들어 나갔다고 한다. 산청국제현대조각심포지엄도 그의 스튜디오에서 열렸다. 그의 목표는 지역의 문화를 한 단계 높이 끌어 올리고자 하는 것. 전국에는 그가 기획하고 조성한 국제조각공원이 영월, 이천, 김천, 부여 등 7곳이나 된다. 지금 그의 옛 스튜디오는 경남예술창작센터로 쓰이고 있다.

복숭아뼈 즈음 오르면 경호강 긴 물줄기가 환하다. 경호란 거울과 같은 호수, 강은 폭이 넓고 큰 바위가 없다. 굽이굽이마다 낮게 쌓인 모래톱과 잔돌들이 강처럼 반짝인다. 강이 향하는 남서쪽의 봉우리들은 지리산의 지맥이다. 저들 중 하나가 구형왕릉이 있는 왕산이겠다. 강 건너 가까운 들판은 제법 넓다. 그리 커서 큰들, 한들, 큰뜰이라 한단다. 동쪽으로는 먼 황매산의 지맥이 첩첩이 다가와 마을 아래에 바짝 엎드린다. 다보록한 마을에 들은 동전만하다. 그리 작디작아서 개뜰이라 한단다. 조각공원의 곳곳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며 듬성듬성 서있는 조각들이 미래의 나무처럼 보인다.

◆목아 박찬수전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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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국제조각공원 초입에 위치한 목아 박찬수전수관.

마을 쪽 낮은 구릉 위에 자리한 것은 ‘목아 박찬수전수관’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인 목아(木芽) 박찬수(朴贊守)가 전통 목조각을 전수하는 교육장이다. 전체 ‘ㄷ’자 형의 한옥으로 작업실과 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문양으로 조각한 문살들이 화려하다. 처마 밑에는 봉황에 올라 탄 동자승이 하늘을 난다. ‘나무새김의 아름다움’ ‘보고 내우고 느끼는 마음’ 등 주련이 모두 한글이다. 맑은 나무 냄새가 짙다.

전시장 안에는 용의 등에 걸터앉아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부처님, 작은 돌멩이가 얼굴인 불상 등 전통 목공예라 불교 조각상이 많다. 그 가운데 공자, 단군, 예수, 마리아도 만날 수 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모작이 눈에 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모작을 여기서 제작했다고 한다. 모작이라 해도 역시 아름답다. 조각의 결들이 너무나 매끈하다. 그의 작품들은 ‘칼로 시작해 칼로 끝’낸다. 이만큼의 매끄러움을 표현하려면 몇 번의 손길과 어떤 집중이 필요한 걸까. ‘목아’는 ‘죽은 나무에 싹을 틔워내듯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뜻이라 한다. 그는 인생에서 자신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후진양성으로 본다. 끊어지지 않는 것, 이어가는 것, 새로 태어나는 것, 이것이 목아의 미래다.

◆산청 생초고분군과 산청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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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에 자리한 생초 고분. 건물은 산청박물관이다.

강쪽 언덕 위에 오뚝한 것은 산청박물관이다. 구릉 마루에서 다시 산책로를 따라 슬금슬금 오르락내리락 하며 박물관 쪽으로 향하면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 강이 내려다보이는 곳곳에 선사시대의 고분이 자리하고 있다. 경남도기념물 제7호로 지정된 생초고분군이다. 유리 지붕을 덮어 놓아 내부를 살펴볼 수 있는데 돌을 쌓아 방을 만들고 천장을 좁혀 뚜껑돌을 덮은 모습이다. 안내문에 따르면 입구와 통로가 있는 앞트기식돌방무덤(횡구식석실분)이라 한다. 생초 태봉산의 고분은 모두 100여기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간 도굴과 개간 등으로 많이 파괴되고 유실되었다. 정확한 연대나 성격도 알 수 없다. 다만 고분군 서쪽에 고려 초기의 석축 형태를 지닌 어외산성이 있는데 그와 관련된 것인가 하는 의구만이 있다. 고분 아래로 마을과 강이 보이는 모습은 어딘가 마음 따뜻한 감이 있다.

박물관에는 산청군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토기류 등 108점이 전시되어 있다. 모두 모조품이라니 조금 힘이 빠진다. 그러나 친절한 직원이 있다. “박물관과 목아 전수관은 월·화요일 쉰답니다.” 잘 생긴 얼굴이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아주 오래전 이곳에 묻힌 이, 조각공원을 만든 이, 후배를 키우는 이, 그리고 친절한 박물관 직원, 이 생초 같은 사람들이 풍요를 만드는구나. 박물관 앞 솔숲 너머로 강이 반짝인다. 뒤돌아보면 그림 같은 언덕이다. 언덕은 언제나 그 너머를 생각하게 한다. 지나왔기에 이제는 안다. 지난해 꽃잔디의 쨍쨍한 빛으로 가득했던 언덕, 어느 해에는 양귀비와 수레국화가 만발했다는 언덕, 오는 봄에는 무엇이 이곳을 뒤덮을까. 그보다 먼저 눈이 내리면 근사하겠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 광주방향으로 가다 함양분기점에서 35번 대전∼통영고속도로를 타고 통영 방향 생초IC에서 나간다. 직진해 남강을 건너 우회전하면 생초면 소재지인 어서리다. 마을로 입구 왼쪽 언덕위에 생초 국제조각공원, 산청박물관, 목아 박찬수전수관, 생초고분군이 함께 자리한다. 조각공원은 매일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산청박물관과 목아 박찬수전수관은 월· 화 휴관하며 입장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모두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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