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짜를 부여잡고 있는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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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4   |  발행일 2018-01-04 제29면   |  수정 2018-01-04
[기고] 가짜를 부여잡고 있는 도산서원
구진영 문화재 제자리찾기 연구원

충남 아산 현충사의 ‘금송’이 사당 바깥으로 옮겨진다. 문화재청은 2017년 11월19일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회의를 통해 현충사 금송 등을 이식하는 조경 경비계획을 가결했다. 금송 이전과 관련해 2011년부터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가 문제제기 및 행정소송 등을 꾸준히 이어갔으며 최근 충무공 이순신 종가에서도 정식 청원서가 제출된 바 있다.

금송은 우리나라에서 자생하지 않으며 일본색이 짙어 사적지 부적합 수종으로 지적돼 오곤 했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금송은 ‘일본서기’에도 등장하고 일왕이 참석하는 기념식수 행사에 흔히 심는 나무다. 자라는 곳부터 쓰임까지 일본을 떼고는 말할 수 없는 일본을 상징하는 나무”라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금송이 심긴 곳은 현충사뿐만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대 초 청와대 뜰의 금송을 아산 현충사, 안동 도산서원, 금산 칠백의총에 내려 보내 기념 식수했다. 이런 이유로 금송은 항일 유적지 및 사적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 현충사 금송 이전 결정이 내려지면서 안동 도산서원과 금산 칠백의총의 금송도 이전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안동 도산서원의 금송은 이전 논의가 진작부터 활발했다. 안동시는 2003년, 금송이 지나치게 성장해 도산서원의 경관을 가리는 등의 문제가 드러나자 경내 밖으로 이전하겠다며 문화재청에 현상변경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당시 문화재위원회는 ‘대통령 기념식수’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 뒤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진행한 행정소송에서 금송 이전 관련 화해권고가 내려졌으나 이번엔 도산서원이 반대한다며 무산된 적이 있다.

도산서원에 심긴 금송의 더 큰 문제는 ‘거짓말’에 있다. 그동안 도산서원 금송은 1970년 12월8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문화재제자리찾기의 조사결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은 금송은 고사(枯死)하고 이에 처벌받을까 두려워한 안동군이 1973년 4월22일 새로운 금송을 사다 몰래 심은 것으로 밝혀졌다. 도산서원에 심긴 나무가 일본을 상징하는 나무일지라도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나무이기에 의미가 있어서 이전할 수 없다는 변명이 옹색해지는 대목이다.

대통령 기념식수가 고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금송을 경내 밖으로 이전하지 않았다. ‘이 나무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청와대 집무실 앞에 심어 아끼시던 금송으로서 도산서원의 경내를 더욱 빛내기 위해 1970년 12월8일 손수 옮겨 심으신 것입니다’라는 표지석의 내용을 ‘이곳은 1970년 12월8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도산서원 성역화사업의 준공을 기념하기 위해 청와대의 금송을 옮겨 심었던 곳이나 1972년 고사됨에 따라 1973년 4월 동 위치에 같은 수종으로 다시 식재하였다’로 고쳤을 뿐이다.

대통령 기념식수가 고사하였다면 더 이상 기념식수로서의 가치가 없다. 지금의 나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은 것이 아니라 안동군이 심은 것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대통령 기념식수가 고사한 뒤 몰래 다른 나무로 바꿔 심은 사례는 또 있다. 바로 국회의사당 제1호 기념식수다. 1982년에는 당시 부통령 신분으로 국회를 방문한 부시가 100년생 주목을 심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 나무가 고사해 다음 해에 똑같은 수종으로 재식재 했으나 또다시 고사, 일본 특산종 화백나무로 교체 식재한 것이다. 이에 문화재제자리찾기가 문제 제기하여 화백나무를 이전시켰다.

안동 도산서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학의 산실이다. ‘대학’에 보면 ‘무자기(毋自欺)’라 하여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했다. 도산서원은 대통령이 심지 않은 가짜 나무를 끌어안고 스스로를 속이며 살 것인가, 지금이라도 나무를 경내 밖으로 이전해 지난 세월 사람들을 속인 것을 바로잡을 것인가. 선택할 순간이 왔다.구진영 문화재 제자리찾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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