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오 인장 이야기 .1] 석재가 사용한 인장 사후 81년만에 모습 드러내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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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2 09:57  |  수정 2018-01-26 11:36  |  발행일 2018-01-02 제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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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석재서병오기념전 개막식에서 서병오 인장을 기증한 후 기증서를 받고 기념촬영 중인 서기호씨(가운데)와 석재서병오기념사업회 장하석 회장(왼쪽) 및 이의익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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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호씨가 기증한 서병오 인장.

구한말과 일제 시대에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대표적 시서화(詩書畵) 대가로 이름을 떨쳤던 대구의 석재(石齋) 서병오(1862~1936)가 서화작품에 사용한 인장(印章)들이 최근 공개돼 서병오를 연구하는 사람과 서화가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그동안 서화작품만 접할 수 있어 아쉬움이 컸는데, 지난해 새롭게 출발한 석재서병오기념사업회(회장 장하석)가 지난해 12월 석재 서병오의 인장을 대량 기증받으면서 석재 현창사업에 큰 획을 하나 그을 수 있게 되었다.

◆22개 인장 중 서병오 작품용 인장은 17개

지난해 12월12일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2017석재서병오기념전’이 열렸다. 이날 오후 2시부터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 시작된 석재 서병오의 시와 석재기념관 건립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끝난 후 오후 5시에 석재서병오기념전 개막식이 대구문화예술회관 1층 전시실 앞에서 열렸다. 이때 석재의 종손자 서기호씨(1940년생)가 가져온 석재 인장을 기증받는 기증식도 함께 열렸다. 서기호씨가 기증서를 받고 보따리에 싸온 인장 보관통을 열어 공개했다. 석재 사후 81년 만에 그의 작품에 사용된 인장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生父 집에서 대대로 보관해오다
작년 12월 12일 석재기념전서 기증식
17개 대부분 돌로 제조…4개는 나무
“집안 망해 다 흩어지고 인장통만 남아”



보자기를 풀고 국화 그림이 그려진 양철 보관통 뚜껑이 열리자 개막식에 참석한 석재서병오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물론 대구시 관계자와 서예가들의 눈길이 모두 그곳으로 몰리며 탄성을 연발했다. 통을 가득 채운 크고 작은 인장 20여 개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기증받은 내용물을 간단히 살펴보니 인장이 22개이고, 인주와 인장을 다듬던 도구 하나가 같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용도를 알기 어려운 둥근나무 토막도 하나 있었다. 인장 22개 중 석재 관련 인장은 17개로 일단 파악되었다. ‘石齋(석재)’가 새겨진 인장 4개, ‘徐丙五印(서병오인)’ 인장 3개, ‘徐氏丙五之印(서씨병오지인)’ 1개, ‘石齋七十以後作(석재칠십이후작)’ 1개, ‘徐薰之印(서훈지인)’ 2개, ‘靑篆(청전)’ 1개, 그리고 ‘思無邪(사무사)’ ‘反求諸己(반구제기)’ ‘壽而康(수이강)’ 등 두인(頭印)과 유인(遊印) 5개다. 그리고 석재 관련 인장 17개 중 대부분 돌을 사용했으나 4개는 나무 인장이었다.

이 인장들은 석재 작품에 사용된 인장을 모두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인장 중에는 작품에 애용된 것도 있고, 사용된 예를 찾기 어려운 인장도 있다. 또 ‘楊光書畵印(양보광서화인)’이 있는데, 이는 석재가 중국 유람시절 만나 교유한 당시의 상하이화파 중 한 사람인 양보광의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는 ‘喆圭(철규)’ ‘趙鏞景印(조용경인)’ 등 다른 사람이나 기관의 인장들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서병오 생부(生父) 서상민 집에서 대대로 보관해온 인장

이번에 기증한 인장들은 물론 인장이 들어 있는 보관통 자체가 보자기에 싸인 채로 석재 사후 대대로 계속 보관돼온 것 같다고 서기호씨는 말했다. 석재가 만년에 국내외 여러 곳을 돌아다녔는데, 대구에 오면 할아버지(서철규)의 집에 머물곤 했고, 당시 사용하던 인장들이 별세 후에 그대로 할아버지 집에 남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대대로 보자기에 싸인 채로 보관해오다 모친이 임종 전에 이야기해 주어서 그것이 인장 보관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한두 번 열어보고 계속 그대로 보관해오다 이번에 가져와 기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병오는 서상민의 아들로 태어나 숙부(서상혜)에게 입양되었다. 형 서병휘의 아들이 서철규이고, 서철규의 큰아들이 서진구이며, 그의 둘째아들이 서기호다.

서씨는 그동안 인장들을 다른 사람한테 보여준 적도 없고 그것을 제대로 살펴보고 정리한 적도 없다고 말하면서 “친구인 이의익 전 대구시장이 석재서병오기념사업회장을 맡아 활동해온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기념사업회에 기증할 뜻을 밝힌 적이 있으며, 이번에 직접 가져와 기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을 기념사업회가 하고 있어 미안하면서도 감사하다”며 인장이 석재 현창사업에 잘 활용되기를 희망했다.

“할아버지(서철규)께서 일본의 도호야마 미쓰루(頭山滿)나 중국의 쑨원(孫文)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고, 벽장에는 대원군 그림들을 비롯해 많은 작품들이 있었는데 집안이 망하면서 다 흩어지고 오로지 석재 할아버지 인장통만 남았다. 어쩔 수 없었지만 부끄러운 마음이 없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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