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1] 지방소멸 방지 첫발은 지방분권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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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2   |  발행일 2018-01-02 제10면   |  수정 2018-01-26
獨·佛 청년 “대도시 갈 필요 있나요” 韓 청년 “서울로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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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새해는 지난해 5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 5당 대표 모두가 지방분권 개헌 국민투표를 약속한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권은 지방분권 개헌을 당리당략과 선거용으로만 생각한 나머지 6월 지방선거와 동시 국민투표 약속에도 아랑곳 없이 국회 개헌특위를 6월말까지로 연장했다. 국회 앞에 설치된 ‘국민자유발언대-개헌 나도 한마디’ 부스(오른쪽)와 국회를 방문한 지방민들의 모습.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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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새해가 밝았다. 해가 가도 이 나라 비(非)수도권 지방의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의 오랜 중앙집권체제는 그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나, 적잖은 폐해를 남겼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수도권 지방민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없다. 군(郡) 출신은 시(市)로, 시 출신은 특별시로 가야 ‘출세’했다고 보는 사회적 인식은 여전하다. 10년 후의 비수도권 지방 청년에게도 같은 현실을 물려줄 것인가. 물론 지방분권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점점 움츠러드는 비수도권 지방을 되살려 지방민들에게 따뜻한 삶의 터전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에 강력한 지방분권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쟁에 휘말려 표류하는 분위기다. 개헌 국민투표가 치러질 예정인 2018년, 우리는 새로운 ‘지방분권 개헌’ 역사를 쓸 수 있을까. 영남일보는 지난해에 이어 무술년 새해에도 지방분권의 필요성과 지방분권 개헌이 갖는 의미에 대해 연속 기획물을 시리즈로 게재한다.

경북 16개 시·군 소멸 위험지역
학령인구 감소탓에 학교도 줄어
분권형 균형발전 해법으로 부상

일각선 “개헌 불필요” 주장하지만
관련 학자·단체 “강력한 동기 마련
1987체제 극복하려면 필요” 반박


◆지방소멸·청년 문제, 분권이 대안

독일의 작은 도시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 에네스는 대학도 하이델베르크의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 에네스는 “지방에 산다고 해서 무시를 받아본 적도 없고, 지방도시의 젊은이들이 다른 대도시로 떠나는 것은 선택 사항일 뿐”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지방도시 디종에서 만난 청년 마르고는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알자스 지방이 고향이지만, 디종의 농업학교로 유학을 왔다고 했다. 자신의 관심 분야인 조경에 대해 전문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마르고는 공부를 위해 수도인 파리가 아닌 지방도시 디종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오랜 지방분권 역사가 있는 독일이나, 지방분권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지방분권 개헌 등 꾸준한 지방분권 정책을 펼쳐 온 프랑스 청년들의 평범한 삶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비수도권 지방 대부분의 현실은 비슷하다. 비수도권 지방의 많은 청년들이 학업을 위해,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없이 더 큰 도시로 수도로 떠나야 한다. ‘떠날 수 있는 것’과 ‘떠나야 하는 것’의 차이는 지방분권과 중앙집권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젊은이들이 떠나면서 지방은 향후 지방소멸을 우려하는 처지가 됐다. ‘한국의 지방소멸 위험지역 현황’ 자료에 따르면 경북 23개 시·군 가운데 소멸 위험지역에 포함된 곳은 16곳으로, 전남(17곳 포함)에 이어 전국에서 둘째로 많았다.

경북의 경우 학령인구(만 6∼17세)가 점점 줄면서 학교 수도 급감하고 있다. 가뜩이나 저출산 사회에서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이 계속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최근 동북지방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경북의 학교 수는 1천639개로 2006년(1천716개) 대비 77개(-4.5%) 감소했다. 지난 10년 전 대비 전국 학교 수는 7.2%의 증가율을 보였지만, 농촌지역이 많은 경북은 이와 반대로 감소세를 보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직면한 지방소멸과 청년들의 탈지방 문제 해결책 중 하나로 떠오른 것이 바로 ‘지방분권’이다.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는 “국가 주도 근대화 추진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중앙집권체제가 강화됐고, 이 과정에서 권력과 자본, 인구, 각종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됐다. 비수도권 지방은 사람들이 계속 빠져나가 활력을 잃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는 방안이 지방분권과 분산이며, 진정한 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지방분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왜 지방분권 개헌인가

정치권 일각에선 ‘굳이 헌법을 고치는 것, 즉 개헌을 하지 않아도 지방분권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개헌 자체를 당리당략적으로 해석하면서, 일부는 지방분권 개헌이 마치 지나치게 급진적인 요구인 양 주장을 펴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학자와 지방분권 관련 단체들은 강력한 지방분권을 위해선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1987년 체제’를 극복하고 보다 심화된 민주주의, 지방분권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방분권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30년 전 개정된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와 관련해 단 두 조항(제117조, 118조)을 두고 있으며, 그나마도 자치입법권의 범위를 ‘법령의 범위 내’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1987년 체제는 지방분권 국가 추진에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많은 학자들의 시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과거 정부 사례를 돌이켜봤을 때, 지방분권 정책의 강력한 동력 마련을 위해서라도 지방분권 개헌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헌법학자인 이국운 한동대 교수(법학부)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헌법·정치적 상황은 분권국가 추진을 더 이상 입법·정치의 차원으로 미룰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종래와 같이 헌법적 권력구조와 가치정향을 그대로 둔 채 법률적 차원에서 지방자치의 부활만을 추진하다가는 대한민국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중앙집권주의적 편향의 구심력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과거 노무현정부에서 87년 체제의 골격은 손대지 않은 채 분권국가를 추진했지만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지방분권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청년 붙잡기 위해선 그 지역만의 교육·고용대책 필요”

■ 대구시 지방분권 대학생 홍보단 전재원씨


대구대 공법학과에 재학 중인 전재원씨(26·사진)는 지난 1년간 대구시 지방분권 대학생 홍보단으로 활동했다. 홍보단원이기 전에 전씨는 대구·경북에서 공부하며 살아가는 청년이다.

전씨를 만나 비수도권 지방에서 살아가는 청년의 현실과 지방분권의 필요성, 지방의 미래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원래 경산(대구대는 경북 경산에 위치)이나 대구가 고향인가.

“아니다. 초·중·고를 경주에서 나왔다. 타지 생활은 대학에 오면서 하게 됐다.”

▶왜 경주를 떠날 수밖에 없었나. 대학 졸업하면 다시 돌아갈 건가.

“비수도권 중소도시에서는 청년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가지 않나. 친구 열에 여덟아홉은 그랬다. 내 동생도 지금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학업, 그리고 취업 때문이다. 지방 중소도시나 군(郡) 단위 지역에는 관공서나 공장 말고는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고, 설령 있다고 해도 취업의 문은 매우 좁다. 무작정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향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번 서울로 가면 대구로 다시 돌아오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지금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간들 무엇을 하며 살 수 있겠나. 이 상태로는 일흔 살은 돼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청년들의 탈지방 현상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나는 다행히 기숙사에 살며 대학을 다니고 있다. 기숙사에 못 들어갔다면 주거 문제 때문에 많이 서글펐을 것 같다. 서울로 간 친구들 중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한동안 24시간 독서실에서 잠을 자는 친구도 있었다. 청년들이 지방에 머무르게 하기 위해선, 그들이 정말 살고 싶어 하는 지역이 돼야 한다. 수도권과 비슷한 수준의 문화생활 향유는 바라지도 않는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수도권으로 떠나는 지방의 청년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그 지역만이 할 수 있는 교육과 실질적인 고용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방분권 대학생 홍보단에선 주로 어떤 활동을 했나. 느낀 점은.

“홍보단의 일원으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지방분권을 알릴 수 있는 각종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고, 온라인 홍보활동도 진행했다. 지방분권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활동을 하면서 유럽의 지방분권이 잘돼 있는 국가들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됐는데, 정말 가서 살고 싶을 정도였다.”

▶구체적으로 왜 지방분권을 해야 할까.

“지방분권 개헌은 지역사회에는 ‘혁신’이, 청년들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방분권 개헌으로 지방정부에 자치재정권·입법권·조직권이 부여된다면, 자체 예산 확보를 통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고유한 산업을 육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 청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교육과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분권 개헌은 우리 모두가 지역사회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국민주권적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기에, 지역 청년들도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지방분권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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