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주 동궁원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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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15   |  발행일 2017-12-15 제36면   |  수정 2017-12-18
1300여년 前 신라의 동·식물원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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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원 식물원 본관. 너른 앞마당에는 석등과 당간지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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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장군의 집에 있었다는 재매정의 재현. 식물원 내 실개천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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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m 높이의 고가 산책로에서 내려다본 동궁식물원의 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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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파크 제2관인 버드 숲. 물가에 사는 오리, 거위, 펭귄 등이 사는 숲이다.

수정궁을 생각했다. 창경궁의 온실도 생각했다. 철과 유리의 집. 19세기 런던에서도 20세기 한국에서도 그것은 놀라운 건축물이었다. 그 집이 여기 있다. 21세기 경주에. 이제는 철과 유리라는 재료도, 거대한 스케일도 더 이상 놀라운 것이 아닌데, 유리의 집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물질이 비물질로 느껴지고, 표면이 공기나 빛처럼 유동하는 듯한 환각에 빠진다. 결국 현실을 잊게 만드는 환각이 매혹의 본질일까.

◆ 동궁식물원

우진각지붕의 온실이다. 용마루 양 끝에는 황금빛 치미가 올라 있고 무심하게 내리뻗은 처마 끝에는 풍경이 달려 있다. 경주 동궁원의 식물원 모습이다. 본관은 2층 규모, 2관은 1층이다. 동선은 2관에서부터 시작된다.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가로로 긴 카페다. 진한 커피향은 들고나는 바람을 쫓느라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카페 너머 내실이 보인다.

온기와 습기가 한꺼번에 훅 덮쳐 온다. 온실 안은 사계절 꽃 정원, 100종 6천500본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촉촉해진 각막 너머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삼색 부겐베리아다. 한 나무에 세 가지 색의 꽃이 핀단다. 부겐베리아는 언제나 더운 나라의 강렬한 분홍으로 기억된다. 이곳의 꽃빛은 한지처럼 은근하지만 온습한 공기와 함께 따뜻한 세계로의 입장을 선포한다.

길이 인도하는 대로 나아간다.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벗고, 야자수들의 숲을 통과하고 팔각정자를 지나 열대의 열매들이 향기를 내뿜는 길을 통과한다. 넝쿨진 꽃들의 정원을 지나 색색의 꽃들과 커다란 고무나무가 동화처럼 가지를 펼친 중앙 정원으로 들어선다. 고무나무의 나이는 250살. 새순이 붉은색으로 돋는다고 한다. 나무 아래에 포니테일의 소녀상이 달린다. 소녀가 향하는 곳에 300살의 보리수가 우뚝 서있다. 줄기의 깊은 주름이 수십 그루의 나무 다발 같다. 거듭거듭 뿌옇게 흐려지는 렌즈를 닦아내야 한다. 그러나 흐려진 정원은 환상적이다.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식물들의 귓속말 같은 것이므로.

삼국사기 ‘…진금이수’ 기록서 출발
옛 東宮과 月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보문호 옆 북천가 한옥형태 유리온실

식물원엔 실개천과 각양각색 꽃·나무
경북 1호 전문동물원 박물관‘버드파크’
새는 물론 파충·어류 등 생태체험 공간



보리수 옆의 아케이드를 지나면 ‘죽지랑관’이다. 팔모지붕의 유리정자 형태로 작은 도서관과 꽃 화분이 있는 쉼터 겸 통로다. 죽지랑관을 지나면 본관. 묵직한 외투를 벗는다. 본관에 들어서서 처음 보게 되는 것은 바오밥나무다. 동궁원의 바오밥나무는 아직 날씬하다. 어린왕자의 어린 나무처럼. 바오밥나무가 성당만큼 커지면 어떡하나 하는 쓸데없이 사악한 기대를 하며 하늘을 나는 하얀 천마상을 지나 우림이라 할 만한 숲속으로 들어간다.

숲속에 실개천이 흐른다. 물길을 따라가면 재매정이 나타난다. 김유신 장군의 집에 있었다는 우물이다. 온실 안을 흐르는 실개천은 이 우물에서부터 시작된다. 야자원, 관엽원, 화목원, 수생원, 열대과원, 고사리원, 식충원 등에 400여 종 5천500본이 자라고 있다는데, 이따금 눈길이 가는 수목의 이름을 건성으로 볼 뿐 맹렬한 탐구심이 솟지는 않는다. 식물들의 충만한 무관심에 잔뜩 젖은 채로 습한 열기와 과잉된 산소의 감미로운 압박 속에서 더 이상 원하는 것은 없어진다.

숲에서는 한정된 공간임을 잊는다. 철컥거리는 불규칙한 풍경 소리가 들려오면 그제야 건물의 가장자리 가까이 도달했음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이 소리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내내 갸우뚱하다 창밖의 처마 끝에 걸린 풍경을 발견했다. 풍경은 매력적이지 않은 둔탁한 소리를 내지만 안과 밖을 명확히 구분한다. 풍경은 조금 신경질이 난 듯하다. 폭포수가 풍경 소리를 지우며 우렁차게 떨어진다. 폭포의 암벽 동굴을 통과해 고가 산책로로 오른다. 우림의 하늘을 뒤덮은 백색의 철골을 바라본다. 티라노사우루스의 백골만큼은 아니지만 엄청 매혹적이다.

◆ 진금이수가 있던 신라의 정원

본관에 출구가 있지만 다시 2관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죽지랑관을 다시 지나며 벽에서 재미난 것을 발견한다. 2012년 1월에 경주시장이 그린 동궁원 초안이다. 현재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하다. 경주 동궁원은 ‘삼국사기’에 ‘674년(문무왕 14)에 궁성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기르고 진금이수(珍禽異獸)를 길렀다’는 기록에서 출발했다. 지금의 동궁(東宮) 터와 월지(月池) 일대다.

오늘의 동궁원은 옛 동궁과 월지의 재해석이다. 동궁원은 보문호 옆 북천 가에 위치하는데 원래는 농업 시험포장을 하거나 화훼재배 용도로 사용되어 왔던 땅이라 한다. 식물원 옆 일만 송이 토마토 정원, 숨바꼭질 정원, 육묘장, 식물병원 등 농업 체험 공간들이 원래의 용도를 계승하고 있다.

◆ 버드파크

‘진금이수’란 ‘진귀한 새들과 기이한 짐승들’을 뜻한다. 동궁원에서 진금이수를 보여주는 곳이 버드파크다. 새들이 9할을 차지하지만 뱀·거북·이구아나 등의 파충류, 우파루파 피라냐,·철갑상어 등의 어류와 다람쥐·패럿 등의 작은 동물들까지 볼 수 있다. 버드파크는 ‘경북도 1호 전문동물원 박물관’으로 등록되어 있고 환경부 지정 생물다양성 관리기관으로 국제희귀 동물의 수입 및 전시가 가능한 곳이다.

상당히 넓다. 2층 규모인데 한가운데 전체가 새장이다. 새장 속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다. 색색의 깃털과 다양한 크기의 몸집, 흰자위가 없는 블랙홀 같은 검은 눈의 새들이 별처럼 많다. 2층은 전시체험관이다. 건물 가장자리의 복도를 따라 오픈형으로 구성돼 있는데 새의 특징, 역사, 신라와 관련된 이야기, 4D 시뮬레이트 등 구성이 다양하다.

버드파크 후문으로 나가면 야외체험장이다. 타조들이 우리 너머로 고개를 내민다. 그 옆에 버드파크 제2관인 ‘버드숲’이 위치한다. 연못이 있는 숲으로 청둥오리와 거위, 그리고 펭귄을 볼 수 있다. 초기 자본도 상당했겠지만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식물원이 시립인데 반해 버드파크는 민간투자 사업이다.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생각한다. 버드파크 입장료는 꽤 비싸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경주IC로 나가 보문관광단지 방향으로 간다. 보문교를 건너면 바로 오른쪽에 동궁원이 있다. 식물원 입장료는 어른 4천원, 청소년 3천원, 어린이 2천원, 버드파크 입장료는 어른 1만7천원, 청소년 1만5천원, 어린이 1만2천원이다. 식물원과 버드파크 통합권은 어른 1만8천원, 청소년 1만6천원, 어린이 1만3천원이다. 개장 시간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7시까지며 연중무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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