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팔길이 원칙’과 문화예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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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3   |  발행일 2017-10-23 제30면   |  수정 2017-10-23
[기고] ‘팔길이 원칙’과 문화예술의 힘
박재환 대신대 음악학부 학부장·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

문화예술은 한 나라의 전통적 가치나 경제발전 및 정치적 권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화와 예술’에 대해 ‘경제적 합리성’의 잣대를 들어 ‘성과주의’라는 비문화적이고 반예술적인 패러다임을 낳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예술에 대한 ‘오해’는 본질적으로 문화예술정책의 실패를 낳기 마련이다. 즉 정책문제에 대한 정의가 올바르지 않으면 ‘제3종 오류’를 가져오는데, 예를 들면 미세먼지가 고등어를 굽는 데서 나온다고 생선구이집의 영업을 중단시키는 경우다.

문화예술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결과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따라서 문화예술의 목적은 경제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의미 생산’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문화예술의 활성화’와 ‘고급문화의 보편적 향유’가 필수적이다.

문화예술지원에 관한 기본원칙은 ‘팔길이 원칙’이다. 이 원칙은 ‘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예산’이라는 공공재의 운영은 여러 가지 법적·재정적 한계를 수반하므로 해당 문화예술사업의 지원규모와 적정성 문제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 또한 관과 관의 문제, 관과 민의 문제, 민과 민의 문제 등 여러 주체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문화예술사업의 경우에는 단순한 ‘팔길이 원칙’으로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문화예술은 전쟁마저도 멈추게 하는 단순한 ‘정책’ 그 이상의 것이다. 1992년 5월27일 세르비아인들의 폭격으로 빵을 사려고 줄 선 사라예보 시민 22명이 사망했다. 전쟁 전까지 사라예보 필하모닉에서 연주를 했던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는 22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는 다음날 오후 4시 그곳에 나타나 첼로를 꺼내 연주를 했다. 연주는 희생자 22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22일 동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계속되었다. 요란하던 총성이 잦아들고 두려움에 떨며 숨어지내던 사람들은 용기를 내어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점령군들은 첼리스트를 제거하기 위해 저격수를 배치하였고 저항군들도 이 첼리스트를 보호하기 위하여 저격수를 배치하였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으나 그는 22일 동안 토마소 알비노니의 ‘아다지오(Adagio)’를 끝까지 연주할 수 있었다.

이렇듯 문화예술은 단순한 예산문제라는 정책적 접근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어떤 원칙이나 기준으로 규정할 수 없는 ‘문화예술’을 우리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을 단순히 경제적 관점으로 제단하거나 블랙리스트 작성 같은 정책적 실수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화예술을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사치재’라고 보는 잘못된 인식도 있다. IMF 환란 직후 주거비가 8%, 주식비는 8.8% 줄어든 반면 문화생활지출비가 22.6%나 준 것을 예로 들며 소비지출에 대한 통계자료에 근거해서 문화예술을 사치재라고 정의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소비지출이 줄었다고 해서 반드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문화소비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문화에 대한 갈증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따라서 ‘공공문화예술의 활성화’와 ‘고급문화의 보편적 향유’를 위한 지원정책은 문화예술 정책의 근간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박재환 대신대 음악학부 학부장·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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