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둥지 떠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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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3   |  발행일 2017-10-23 제29면   |  수정 2017-10-23
[기고] 둥지 떠나기

가끔 텔레비전에서 동물 다큐멘터리를 본다. 드라마처럼 다음 회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예능처럼 번잡하지 않다. 대신 그 화면과 내용에서 주는 감동과 교훈이 만만찮다.

어느 프로그램에서 본 내용을 소개한다. 부모새는 바다 절벽 바위 위나 산속 높은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짓고 3~4개의 알을 낳아 온 정성을 다해 품는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면, 알에서 새끼가 깨어난다. 새끼새는 날개가 작고, 깃털조차 변변하지 않다. 새끼새는 “끽끽” 하면서 먹이를 보챈다. 부모새는 처음에는 소화되기 쉬운 먹이부터 먹인다. 새끼가 자라면서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횟수도 늘어나고, 먹이도 커진다. 그러면서 새끼새는 가끔 둥지에서 나와 옆에 있는 바위나 나뭇가지 위를 걸어 다니다 완전히 자라지 못한 날개지만 펼쳐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직 덩치도 부모새만 못하고, 날갯짓에는 힘이 부족하다.

부모새의 보살핌으로 새끼새는 곧 젊은 새가 됐다. 사람으로 치면 성년이 된 것이다. 부모새는 본능적으로 그 새가 이제 둥지를 떠날 때가 됐음을 안다. 그러면 부모새는 더 이상 젊은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 않는다. 그러나 떠날 때를 모르는 젊은 새는 둥지 밖으로 나와 전처럼 “끽끽”거리며 먹이를 보챈다. 하지만 부모새는 둥지 인근에서 아무 말 없이 지켜볼 뿐, 요지부동이다. 결국 젊은 새는 바위 절벽이나 높은 나뭇가지에서 몇 차례 날개를 퍼덕이다 이내 박차오른다. 부모새에게 그동안의 보살핌에 감사를 표시하는 듯, 젊은 새는 둥지 주위를 몇 번 돌다가 넓은 바다 위로, 깊은 산속으로 날아간다. 부모새는 그 장면을 좀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그 새를 미물이라고 하지만, 새들이 빚어내는 장면은 엄숙하면서도 경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고시에 합격한 젊은 엘리트들이 점심을 먹은 후 자기들끼리 이야기 도중에 “우리 엄마가 어쩌고저쩌고”라고 한다는 칼럼이 몇 년 전 신문에 실렸다. 젊은 의사의 전공과목을 그 부모가 지도교수를 찾아가 결정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빗나가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나”라고 하는데, 마치 그 장면이 젊은 연인 사이 같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부모가 자녀 양육 방법을 택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자녀들이 현 세대를 이어받아 나중에 이 사회를 주도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장래, 직업, 결혼 등 중대사를 결정하지 못하는 세대가 사회 안전, 구성원들의 공존 등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부모가 자녀의 직장까지 선택해 주고, 부모의 경제력으로 자녀에게 빌딩을 사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부모가 자녀보다 더 오래 살면서 모든 부분을 살펴봐 줄 수는 없다. 자라면서 혼자 사냥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새끼곰은 다 커서도 사냥할 수 없고, 혼자 살 수 없다고 한다. 때가 되면 자란 새를 둥지에서 떠나보내는 부모새처럼, 우리도 때가 되면 자녀들을 둥지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그래야 자녀들이 사회에서 번듯하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고, 부모들도 다시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다.

이제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 부모가 지금까지 받은 교육, 부모가 살면서 택한 직업 기준이 자녀에게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반면 자녀가 살아갈 세상은 녹록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자녀들이 둥지에서 떠날 수 있도록, 지켜보면서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비록 당장은 방황하며 힘들어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당당하고 책임 있는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의 무관심’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는 이제 곧 둥지를 떠나야 하는, 그리고 둥지를 떠나는 연습을 하는 두 아들이 있다. 이 두 아들이 저 푸른 바다 위에서, 그리고 저 높은 산 위에서 힘찬 날갯짓으로 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김수호 (법무법인 우리하나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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