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요즘 세태를 보는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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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6   |  발행일 2017-10-16 제29면   |  수정 2017-10-16
[기고] 요즘 세태를 보는 심정

1980년대 초, 광주를 피로 적시고 올라선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대학은 시끄러웠다. 그 불의한 상황을 다들 못 견뎌 했으니 다양한 방향으로 변화를 꿈꿨다. 어떤 선배는 혁명을 이야기했다. 난 내심 그에 공감하지 않았다. 혁명이라는 말 자체도 내겐 익숙하지 않았으려니와 그런 급격한 변화를 선호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지방대를 나와도 일자리는 널려 있었다. 약간만 마음을 고쳐먹어 편히 살려면 그런대로 살 만한데 왜 굳이 가시밭길을 걸으려 하겠는가. 난 가시밭길을 가고 싶지 않았다. 삶은 재미있어야 하는데, 혁명을 하겠다는 삶이 재미와 연결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혁명을 말하는 친구들은 좋아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뭔가 바람직한 상위의 가치를 추구하는 그들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과 더불어 술을 마시며 젊은 날을 보냈고, 이후에는 그 기억을 잊고서 오랜 기간 생활에 몰두해 살아왔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도 50을 훌쩍 넘었다. 지금 죽어도 적어도 요절했단 소리는 듣지 않을 나이다. 아직 직업도 있고, 그런대로 생활은 하고 있으니 큰 아쉬움도 없다.

하지만 난 요즘 세태에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면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으로 걱정을 내려놓기 어렵다. 많은 젊은이들이 열심히 공부를 해 대학을 졸업해도 일할 곳을 찾지 못한다. 언론을 통해 자주 어린 중·고등학생이 친구를 학대하는 사건을 접한다. 아이들은 대학 입시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성적경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들 또한 그들에게 펼쳐질 앞으로의 삶이 그리 녹록지 않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 절망한 아이들이 서로를 적대하면서 폭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 다른 한편에선 어르신들이 골방에 고립돼 홀로 생존하다 죽는다. 자영업자들의 생활은 어떠한가. 도처에 넘쳐나는데 미안하지만 그들 중 누구에게는 폐업이 예정돼 있다. 그들 역시 홀로 삶의 무게를 감당하다 조용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세상은 무심히 굴러간다. 세상은 해결할 문제로 가득 차 있고 고통받는 사람은 많은데, 정부든 언론이든 얼마나 진지하게 해결책을 모색하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이명박정부 때 대통령과 그 주위 사람들이 멀쩡히 잘 흐르던 강을 뒤집어 엎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죽은 강을 살리겠다고 했지만 개인적인 탐욕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보를 만들어 가둔 강물은 녹조로 뒤덮이고 마시기 어려울 만큼 오염됐다. 당시 학자라는 이들, 언론에 종사하는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최악의 결과가 뻔히 보이는 4대강사업을 두둔하고 올바른 것이라 했다. 그렇게 해서 오염된 강물을 정수해 우리가 마시고 있다. 이뿐인가. 군인들은 나라를 지키는 데 써야 할 신성한 돈을 가지고 숱한 비리를 저질렀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공정’과 ‘정의’라는 아름다운 말은 비웃음의 대상이 됐다. 이런 데서 내 아들과 딸 그리고 무수한 이 땅의 후손들이 살아가야 한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의문이 생긴다. ‘이 사회, 이대로 나가면 과연 지속가능할까’ ‘이런 식이라면 지속할 자격이라도 있겠는가’.

한국이라는 공동체에 깃들어 사는 다수를 절망케 하는 여러 문제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걸 뭐라고 부를까. 개혁이라고 하나, 혁신이라고 해야 하나, 혁명이라고 하나. 만약 그것을 혁명이라고 한다면 그런 혁명은 좋은 것이 아닌가.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 이대로는 더불어 행복하게 살기 곤란하니 이 상황에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이 땅에 깃들어 사는 이들이 여기에서의 삶에 긍지와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걸 두고 혁명이라 부르든, 개혁이라 부르든, 혁신이라 부르든 간에.

지극히 보수적이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성정을 가진 나조차도 머릿속에서나마 혁명이니 개혁이니 하는 말을 뇌까린다. 그만큼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이 만만치 않다. 주저앉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분투할 일이다. 삶을 한 세대의 한탕 잔치로 끝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숙명적으로 살아야 할 뒷세대, 우리 피붙이의 삶도 더불어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범주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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