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미의 가족 INSIDE] 익숙한 것과의 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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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7   |  발행일 2017-08-17 제21면   |  수정 2017-08-17
[송유미의 가족 INSIDE] 익숙한 것과의 결별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은 아버지가 된 다음, 아내와 자녀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폭력 아버지 밑에서 자란 딸은 “나는 절대로 아버지와 같은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성인이 되어 아버지를 닮은 배우자를 만난다. 극단적인 경우 남편을 아버지와 같은 배우자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어린 시절 공포, 좌절, 거절 등 부정적인 감정들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큰 아이러니는 아이들이 어른이 된 이후 ‘새롭게’ 맺는 인간관계에서 어린 시절 경험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를 학술적으로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고 명명될 만큼 사례들은 흔하다. 반복강박은 성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양육되었던 것과 똑같은 정서 세계에 살도록 한다. 성인이 되어 맺는 인간관계에서도 자신들의 원가족과의 관계 패턴을 답습한다는 것이다. 이는 수십 년이 지났고 전혀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여전히 원가족과의 애착관계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비유컨대, 새로운 배우들과 하는 전혀 다른 연극이지만, 자신은 예전과 동일한 배역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상담했던 40대 남성 A씨는 아버지의 폭력, 어머니의 재혼 등을 경험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을 책임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A씨에게 원부모와의 관계 패턴과는 다른 관계 패턴의 집단이나 모임에 소속되어 볼 것을 권했다. 교회를 스스로 찾아간 A씨는 처음에 교인들의 아낌없는 사랑과 관심에 감동을 받은 듯했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자, 밋밋해지기 시작했다. ‘일이 많아서’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서’ 등의 이유로 교회 출석은 줄어들었고 급기야는 교인들의 관심과 사랑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대신 좋아하던 음악 동호회에 가입했고 총무를 맡을 정도로 열성을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도 탈퇴했다. 이유는 ‘갑자기 사람이 싫어졌다’ ‘무언가 확 치밀어 올랐다’였다. 그다음의 운동 동호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비슷했다. 이렇듯 반복되는 A씨의 무책임함에 사람들의 비난과 손가락질은 당연했다. A씨가 자초한 것이고 부모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책임지지 못한 전철을 밟고 있었다. 그것이 그에게는 이미 익숙하고 편한 것이 되어 반복되고 있었다.

반복강박을 해결하는 데는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의식적으로 희망하는 삶이 어려울까봐 힘들까봐 두려워, 차라리 익숙한 것에 길들여져 산다. 익숙한 것이 괴롭고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머물러 있다. 머릿속으로는 떠나고 싶지만, 그것이 편하고 쉽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지낸다.

필자는 의식적으로 희망하는 그곳이 저 강 건너에 있다면 그곳을 바라만 보지 말고 건너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막상 해보면 어렵지 않고, 두렵지 않다. 실제 건너다 보면 젖기도 하겠고 넘어지기도 하겠지만, 얕을 수 있고 건널 만하다. 만약 건너지 않고 그대로 산다면, 어린 시절을 되풀이하는 것이고 자신이 양육되었던 것과 똑같은 정서세계에서 살아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나쁜 대상, 즉 양육자에게 강하게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과거의 양육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착각이다. 왜곡된 믿음이고 왜곡된 희망이다. 상처가 큰 만큼 왜곡도 크다. 빨리 그것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A씨와 같은 경우, 이제부터라도 무의식에 습관화되어있는 부정적인 느낌에서 벗어나 자신이 의식적으로 원하는 좋은 느낌, 좋은 감정을 찾아야 한다.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의식적으로 원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룹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느낌을 찾고 익숙해져야 한다. 그런데 원하는 느낌에 적응하기도 전에, 어릴 때 익숙했던 과거의 느낌을 찾아 되돌아가기가 반복될 수 있다. 그래도 익숙한 느낌과 결별하고, 원하는 느낌에 적응하는 반복과 훈련 그리고 의식적인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행복한가족만들기 연구소 소장 겸 대구사이버대학교 교수 songyoume@d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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