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38분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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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8   |  발행일 2017-04-18 제29면   |  수정 2017-04-18
강규섭 나르샤심리 상담硏 소장
[기고] 38분간의 삶
강규섭 나르샤심리 상담硏 소장

러시아 월드컵 축구의 본선 진출을 위한 경기가 지난달 25일 A조 5위 중국과 치러졌다. 결과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1-0이라는 충격적인 패배로 이어지면서 본선 진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경기가 끝날 무렵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남은 3경기에서 2승1무만 거둔다면 본선 진출은 거의 확실시된다. 아직도 기회가 남아 있다. 기회가 있다는 것은 곧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인생을 경기로 비유해 보면 실존의 인간에게 허용된 시간은 단 한 차례뿐인 첫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로 게임의 종료 휘슬이 언제 울릴지 모르는 가운데 승패를 가린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5분을 제한 시간으로 한 경기를 치르며 살았고, 작금의 대한민국에서는 38분을 제한 시간으로 한 경기에서 경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2015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대한민국은 2003년부터 통계일까지 13년간 자살률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38분당 1명의 국민이 자살하는 국가가 오늘날 대한민국이다. 자살 시도 원인을 보면 경제적 문제는 10.1%밖에 안 되나, 정신과적 증상(우울·외로움 등)과 대인관계 문제가 80%대에 이르고 있다. 나이 분포별로 보면 65세 이상 노년층이 64%를 차지하고 청소년층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자살이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3가지 선물(자유의지·양심·시간) 중 하나인 실존으로서의 가치인 시간(기회)을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해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물체 중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왜 인간만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일까.

현대 과학은 지구상에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동·식물)는 모두 인간의 관심(사랑)에 의해 그 성장이 달라진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성이 없는 생명체들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주변의 관심에 의해 호불호가 달라지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주위의 관심에 가장 민감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소속감과 존재의 의미다. ‘왕따’라는 단어는 근래 출현한 은어가 신조어로 자리매김하면서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가 사회에 출현하기 이전에는 청소년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지는 않았지만 근래에는 왕따라는 말이 청소년의 자살과 청소년 범죄의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이 밖에도 ‘묻지마’라는 단어를 어두에 붙인 살인과 폭행 등이 현 시대의 화두로 번져 나가는 현상도 왕따라는 단어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38분 만에 한 사람의 대한민국 국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사흘이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묻지마 사건’ 등이 횡행하는 작금의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타인을 향한 단 한 사람의 목례와 눈웃음이다. 나의 곁을 둘러보고 혹여나 이러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는지 국가와 사회가 발 벗고 나서야 할 때다. 자신을 봐주는 단 한 사람의 눈길만 있어도 인간은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지 않는다.

인터넷뉴스팀기자 ynnew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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