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통합공항 이전, 똑똑한 시민들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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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02   |  발행일 2017-02-02 제29면   |  수정 2017-02-02
[기고] 통합공항 이전, 똑똑한 시민들에 달렸다
이진훈 (대구 수성구청장)

유럽에서도 직접민주주의에 기반한 지방자치가 잘 발달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는 2013년 3월 네 가지 현안에 대해 시민들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첫째, 2028년 하계 올림픽 유치 신청. 둘째, 일부 지역에서 시행 중인 유료주차 도시 전체로 확대. 셋째, 대중교통·청소 등 공공서비스 민영화. 넷째, 시민 참여 신재생 프로젝트 확대 등이다.

올림픽 유치라는 중대사에서부터 유료주차 지역 확대 같이 모든 도시가 안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까지 시민들에게 결정을 맡긴 것이다. 그 결과 넷째를 제외한 세 가지 모두 60% 넘는 반대로 나타났다. 셋째, 넷째 정책은 이런 결과가 예측됐으나 야심 차게 밀어붙였던 첫째, 둘째 정책마저 반대에 부딪히는 바람에 시 정부는 시정 운영 동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같은 정책을 우리에게 대입해 보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올림픽이라는 세계적 행사 유치라면 의미와 필요성, 효과에 대한 시 정부의 대대적인 홍보가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유료주차 지역 확대 정책쯤은 시민 의견을 묻지 않고도 일방적으로 추진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민들은 과연 시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여줄까? 정부가 거의 모든 정보를 독점하던 산업화 시대의 시민이라면 정부 정책이 곧 성장과 발전이라는 믿음 속에 묵묵히 지지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안에 세상의 모든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는 오늘날의 시민들은 냉정하게 실리를 따져 거리낌 없이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정부보다 더 똑똑한 시민들이 분명하게 의지를 표현하는 모습은 촛불 민심에서 너무나 생생히 보지 않았는가.

멀리 오스트리아의 몇 년 전 상황을 길게 되새겨보는 건 대구공항 통합 이전이라는 현안을 안고 있는 대구의 형국이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대구공항 통합 이전은 대구의 미래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엄중한 문제다. 더구나 밀양 신공항 무산이라는 실망과 분노를 아직 완전히 떨치지 못한 대구시민들에게는 획기적 방안이라기보다 면피용 땜질이 아니냐는 근본적 의구심을 갖게 만들고 있다. 영남일보가 최근 실시한 통합 이전지 대구경북민 여론조사에서 10명 중 4명이 선호 후보지가 없다고 응답했다는 결과도 우려스럽다.

이런 현실에도 이전을 추진하는 대구시가 시민들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신공항 용역이 제대로 됐는지 검증해보자며 3억원이나 들여 용역을 했으면 시민들에게 결과를 자세히 밝히고 정부에 어떤 점을 따지고 요구해야 할지 의견을 들을 일이다.

7조원이 넘는 이전 비용을 대구시가 시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해서도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전 후보지 각각에 대한 접근성 문제도 도로나 교통 사정 등을 고려해 실감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대구시내 빠져나가는 데만 30분 넘게 걸리는데 한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지역이 있겠나?” “지하철이나 철도같이 도착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으면 한 시간은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라는 시민들의 푸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밖에 이전 공항의 규모, 이전지 개발 방안, 경제적 파급효과 등 많은 전문가들이 염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제대로만 된다면 대구 동북지역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K2와 대구공항이 이전하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통합 이전이 대구·경북 상생의 길로 가야 한다는 대의에도 충분히 공감한다. 관건은 시민들이다. 그것도 손안의 컴퓨터 스마트폰을 갖춘 똑똑한 시민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가 문제다. 대구시민이든 이전 후보지 주민이든 어느 쪽이라도 반대의 입장을 낸다면 후폭풍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이전 공항이 김해공항보다 가깝다는 대구시의 홍보보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더 믿는 시민들에게는 숨김없는 정보 공개와 열린 토론을 통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 최선이다. 어렵사리 찾아온 통합공항 이전 기회가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지 않도록 대구시의 태도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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