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조영남이 무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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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28   |  발행일 2016-05-28 제23면   |  수정 2016-05-28
[토요단상] 조영남이 무죄라고?

인류사에 나타난 미술의 흐름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시작은 ‘알타미라의 동굴’이다. 고전주의와 사실주의에 이르기까지, 이 시기의 그림은 실물과 닮게 그리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다음은 ‘바르비종의 숲’이다.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놀던 이 숲에서 피카소와 마티스에 이르기까지, 회화는 비로소 조형과 색채의 꽃을 피웠다. 그리고 마침내 ‘마르셀 뒤샹의 등장’으로 파격과 놀람의 현대미술사가 시작된다.

뒤샹은 20세기 회화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어느 날 그가 시장에서 변기를 하나 샀다. 거기에다 서명을 하고 ‘샘(fountain)’이란 이름을 붙여 뉴욕 ‘앙데팡당전’에 출품을 했다. 물론 당시엔 거부를 당했지만, 나중에 그 변기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제치고,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개당 가격 또한 수백만 달러를 호가한다.

뒤샹은 다다이스트들과 가깝게 지냈으며, 초현실주의자들과 함께 놀았다. 그는 ‘그림이 시각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충격을 주지 않는 작품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보란 듯이 콧수염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스스로 ‘뉴욕 다다’가 되었다. 뒤샹 이후 현대미술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레디메이드 작품은 보통이고, 수십 명의 조수를 두고 대작(代作)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제는 화가의 ‘손맛’이 아니라 ‘콘셉트’가 작품을 좌우한다. 예를 들어 보자.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면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이 전시되어 있다. 탑처럼 생긴 그 설치물은 무려 1천3개의 TV를 쌓아 만들었다. 이 작품에 실제로 백남준의 손길이 닿은 곳은 어디일까? 그가 TV를 만들었을 리도 없고, 16t이나 되는 무게를 손수 쌓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 작품이 그의 것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백남준은 인류의 문화유산 같은 예술가다. 그의 유해는 서울과 뉴욕, 독일에 나뉘어 안치되어 있다. 예전 미국 필라델피아에 그의 작품공방이 있었다. 그가 죽고 나서도 한동안 거기서 유작들이 나왔다. 작가가 죽었는데 작품이 나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것이 가능했다. 살아있을 때 그가 작품의 ‘콘셉트’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부인 구보타 시게코의 보증조차 필요 없다. 현대미술은 매사가 이런 식이다.

가수 조영남의 대작 논란이 한창이다. 검찰은 “조영남씨가 한 무명화가에게 8년 동안 300여점의 화투 그림을 그리게 하고, 자신이 그린 것처럼 작품당 수천만원에 팔아 사기죄가 의심된다”고 했다. 조영남은 펄쩍 뛰며 부인을 했다. 화투는 천하가 인정하는 자신의 ‘콘셉트’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외주(外注)를 주는 것은 현대미술의 ‘관행’이 아니냐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나 ‘마이클 잭슨’ 같은 실크스크린 작품은 외주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장에서 제작을 했다. 워홀은 공장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석공예가의 작품은 금은방에서 만든다. 패션 디자이너의 옷은 봉제공장에서 만든다. 이처럼 많은 예술가들이 조수들이나 남의 손을 빌려 작품을 완성한다. 그렇다면 조영남은 어떨까? 과연 무죄일까?

여기서 그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에 물어야 한다. 자신의 작품이 예술의 생명인 독창성과 진정성이 있는지, 자신만의 확고한 미학적 소신이 있는지, 지금도 어두컴컴한 화실에 앉아 붓질 하나에 목숨을 거는 이름 없는 화가들에게 떳떳한지. 하나라도 양심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다음 달 대구전시는 그만두는 것이 백번 옳다.
노병수 대구 동구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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