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보자’의 실제 인물…MBC ‘PD수첩’ 책임PD 지낸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

  • 박진관
  • |
  • 입력 2014-10-31   |  발행일 2014-10-31 제37면   |  수정 2014-10-31
“제2의 ‘황우석 스캔들’ 제보 들어오더라도 압력에 굴복할 일은 없다”
20141031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가 지난 22일 모교인 경북대를 찾아 글로벌프라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27일, 영화 ‘제보자’의 누적관객수가 170만명을 넘어섰다. 이 영화는 2005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사건을 폭로한 제보자와 이를 보도한 MBC방송국 ‘PD수첩’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팩션영화’다. 영화 대사 가운데 “진실과 국익 중에 무엇이 우선할까”에 대한 대답으로 “진실이 국익이다”라는 현답을 제시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윤민철 PD(박해일 분)와 심민호 박사(유연석 분), 이장환 박사(이경영 분) 등 3명이지만 당시 책임PD로서 윤 PD를 성원하고 지지해 준 이성호 팀장(박원상분)의 역할 또한 작지않다. 당시 이 팀장의 실제인물인 최승호 PD(52)는 시사교양제작국의 간판이었으나, 2012년 MBC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그는 현재 ‘뉴스타파’의 앵커 겸 PD로 활동하고 있다.


‘경찰청 사람들’ 만든 주인공
대학때 연극활동 큰 도움
배우 기용, 실제상황 그려
시청률 30% 스타PD 발판

‘PD수첩’과 ‘황우석 사태’
게시판 제보로 취재시작
상상초월한 외부의 압력
프로그램 폐지 등 수난사
길고긴 재판 끝 진실 인정돼

해직후 ‘뉴스타파’ 앵커로
해직 언론인 35명과 함께
성역 없는 탐사보도 견인
속보보다 정확성에 방점

지난 22일 오후 최승호 앵커가 연구공간Q와 경북대 비정규교수노조의 초청으로 모교인 경북대를 찾아 특강을 했다. 특강엔 대학생과 일반인은 물론 중·고생까지 참석했다. 이에 앞서 경북대 글로벌플라자에서 최 앵커를 만났다. 그는 TV에서 보던 냉철하고 딱딱한 인상과는 달리 부드러운 미소와 유머감각을 가졌다. 그는 한국PD연합회가 주관하는 ‘2011년 올해의 PD대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17일엔 ‘국정원 간첩조작 연속보도’로 한국기자협회·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PD연합회가 주관하는 제20회 통일언론상 대상을 수상했다.

-대구 출신인 줄 몰랐다. 경북대엔 자주 오나.

“강원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초·중·고교를 나왔다. 모교에는 법정계열(80학번)로 입학해 행정학과로 졸업했다. 고위공무원을 지망하는 행정학과 재학생을 대상으로 ‘언론에서 바라보는 바람직한 공무원은 어떤 상인가’같은 주제로 특강을 하러 왔다.

-행정학과를 졸업했는데 행정고시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하지 않고 언론사로 방향을 튼 이유는.

“대학시절 한달 정도 고시공부를 했는데, 공무원은 체질에 맞지 않는 것 같더라. 극예술연구회(연극반) 동아리활동을 열심히 했다. 이래봬도 종종 주연배우로도 활약했다(웃음). 선후배랑 어울려 술 마시고, 연애하고 뭐 그랬던 것 같다. 기억나는 작품으로 ‘출세기’라는 작품을 했는데 당시 배역은 ‘사이비 기자’였다. 연극반 선배였던 김재석 교수(경북대 국문학과)가 각본을 썼는데, 극단 ‘시인’(현 함께 사는 세상)과 같이 공연했다. 언론사에 들어간 계기는 군대(카투사 복무)에 있을 때 시험을 쳐서 언론사에 입사한다는 걸 처음 알고 복학해서 공부를 좀 했다.”

-언론사는 언제, 어디로 처음 입사했나.

“1986년에 MBC 교양제작국 ‘TV PD’로 입사했다.”

-적성에 맞던가.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연출했나.

“연극을 했던 게 프로그램을 만들고 연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조연 시절을 4년 정도 거쳤다. 처음 맡았던 프로그램은 생방송 다큐멘터리 ‘신 국토 기행’이었는데 조연출을 했다. 무척 재미있었다. 89년에 메인 PD가 돼 ‘우리시대의 명인’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93년에 ‘경찰청 사람들’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90년대 일어난 사건들을 프로그램으로 재연한 것인데 만 2년을 했다. 배우를 써서 실제상황과 같게 했는데 흥미로웠다. 범죄는 그 시대의 타임캡슐이자 바닥을 보여주는 것이다. 1년 시청률이 평균 30%를 기록했는데 드라마타이즈 형식의 인기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폭력을 모방한다는 부정적인 여론도 있었다.”

-PD수첩 팀엔 언제, 어떻게 합류했나.

“90년에 생긴 ‘PD수첩’에 가고 싶었으나 95년에 합류했다. 사내에선 내가 좀 반항적이었다. 그런데 ‘경찰청 사람들’이 히트치자 ‘위험한 인물은 아니구나’하고 용납이 됐던 것 같다.(웃음)”

-PD수첩에선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었나.

“95년에 합류해 ‘분단비극의 현장 금정굴 열리다’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6·25전쟁 이후 최초로 양민학살의 물적증거인 150여기의 유골을 발굴했다. 반향이 컸다. 죄 없는 사람들이 전쟁 중에 경기도 고양에서 많이 학살당했다. 아이의 땋은 머리도 나왔다. 죽은 자의 영을 위로하고,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후 주로 역사나 시사 관련 프로그램을 했다. 광주 5·18실종자 암매장과 재벌, 대형 교회문제 등을 다뤘다. 이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프로그램의 책임 PD를 했다. 방송PD로선 사회고발프로그램 1세대라고 보면 될 것 같다.”

20141031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가 지난 22일 모교인 경북대를 찾은 가운데 인터뷰 도중 전화를 받고 있다.

최승호 PD는 2003~2005년 MBC노조위원장을 하다 책임PD로 PD수첩에 복귀했다.

-2005년 PD수첩이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관련 논문이 조작됐다는 보도를 해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어떻게 취재를 하게 됐나.

“PD수첩 게시판을 통해 제보가 들어왔다. 황우석 박사와 함께 연구를 한 류영준 팀장이 자신의 신분을 명확히 밝혔다. 류 팀장(현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은 줄기세포 연구를 하다 2004년 말 연구실을 나온 상황이었다. 그는 줄기세포연구의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황 박사의 논문이 불투명하다고 했다. 그가 나온 뒤 줄기세포가 11개나 만들어졌다고 보도됐는데 그런 방식으론 도저히 줄기세포를 만들 수 없다고 했다. 한학수 PD가 취재한 다음 그해 11월초에 1편을 내보내고, 2편은 11월15일 방영했다. PD수첩이 실력이 없어서 비리를 파헤치지 못 한 적은 있으나 권력과 자본에 굴복한 경우는 없었다.”

-영화에서 ‘이성호 팀장’이 본인인가.

“그렇다. 약간 코믹하게 나오더라(웃음).”

-방영되고 난 뒤 후폭풍이 거셌다.

“앞으로도 그때만큼 힘든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정부로부터의 압력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시청자로부터의 어마어마한 압력이었다. 방송을 하지 말아달라고 항의하는 것은 기본이고, 광고주에게 압력을 가해 광고가 다 떨어졌다. 첫 방송에서 줄기세포연구에 사용된 난자가 돈을 주고 구입했다는 걸 밝혀 황 박사가 서울대 교수직 사퇴 기자회견을 했다. 그래서 시청자들이 이해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MBC사옥 밖에서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회사전화가 거의 마비됐다. 또 홈페이지에 수십만 건의 항의성 글이 올라와 서버가 다운될 지경이었다.”

-지금 또 그런 제보가 들어온다면 취재를 하겠나. 어떤 교훈을 얻었나.

“당연히 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영리하게 할 것 같다. 당시엔 무조건 밝히면 다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MBC가 항복했다. PD수첩 방영이 무기한 중단되다 결국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나는 대기발령을 받고 징계를 당해 다른 부서로 배치됐다. 그러던 차에 소장과학자들이 PD수첩에 방영된 취재내용이 진실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다른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서 논문검증이 시작됐다. 검찰이 황 박사를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재판이 10년 가까이 진행됐다. 결국 2014년 2월27일, 대법원은 줄기세포 조작사실을 숨긴 채 지원금을 받아내고 연구비를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황우석 전 교수에 대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취재과정에서 취재윤리 논란이 있었는데, 취재과정에서 실수를 하게 되면 취재 결과물이 공격받게 된다는 교훈도 얻었다.”

-미국엔 언제 갔나.

“윤리적인 취재, 과학적인 취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2008년 미국에 가서 IRE(탐사보도협회)에서 1년간 탐사보도 공부를 했다.”

-황우석 사태 이후 학계의 논문조작과 베껴 쓰기 등이 사라졌나.

“학계가 관심을 가진 계기가 됐다. 국회청문회에서 장관후보자가 논문을 베껴 쓰거나 해 낙마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정착되는 것 같았지만 이명박정권 이후 유명무실하게 됐다. 제자의 논문을 베껴 쓴 것은 물론 심지어 제자에게 생체검사를 가해 불구가 되는 사건이 있었음에도 전혀 감시가 안 되더라.”

-미국에 유학하고 난 뒤 복귀해 어떤 프로그램을 했나.

“평PD를 하겠다고 자원했다. PD수첩 역사 중 앵커와 책임PD를 하다 후배 밑에서 평PD를 한 첫 케이스다. 2009년 6월 ‘기로에 선 4대강’ ‘해군장교 양심선언’ ‘검사와 스폰서’ 등을 보도했다. 2010년 8월엔 ‘4대강 수심 6m의 비밀’로 대운하 계획을 폭로했는데, 이듬해 PD수첩에서 쫓겨나 외주관리 평PD로 갔다.”

-심정이 어땠나.

“다른 부서로 발령 낼 거란 예상을 하고 있었다. 김재철 사장이 들어오고 난 뒤 MBC는 내리막길로 들어선 게 사실이다. 2012년 1월 언론사상 170일간의 최장기파업을 했다.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그해 6월20일 정연하 노조위원장, 박성제 기자 등 6명이 해직됐다. 올 1월 1심 해고무효소송에서 승소했다.”

-PD수첩이 기자가 해야 할 영역을 대신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비판도 있다.

“기자와 PD 사이엔 영역을 두고 갈등이 존재한다고 본다. 탐사보도에 있어 PD수첩이 강한 면모를 보였던 것은 편집국이나 보도국이 가지고 있지 않은 시스템에 있다. 황 박사 사건을 취재할 때 리서치연구원, 메인작가, 조연출을 더 붙여줬다. 인력을 투입해야 세밀하고 다양한 취재가 가능하다. 방송의 보도기사는 대개 1분30초를 넘지 않고, 길어봤자 5분이다. ‘시사매거진 2580’같은 경우 13분인데, 그 시간 갖고는 진실의 총체성을 제대로 드러내기 어렵다. PD수첩은 1시간이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샅샅이 파헤칠 수 있다. 사실 MBC보다 KBS의 탐사보도가 더 선진적이다. 1년 가까이 취재하는 것도 봤다.”

-최근 MBC가 시사교양제작국(시교국)을 폐지한다고 하던데.

“시교국이야말로 MBC가 공영방송이란 걸 상징하는 거다. 김재철 사장 때 시사는 시사대로, 교양은 교양대로 찢어졌다. 시교국을 없애면 공영방송국이라 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를 외주로만 만들겠다는 의지다. 시청률이 얼마나 오를지 모르겠지만 시청자를 위해, 사회를 위해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시교국의 호적을 파버리면 공영방송을 포기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해직되고 난 뒤 ‘뉴스타파’를 만들었다.

“2013년 2월부터 뉴스타파의 앵커 겸 PD를 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비영리 탐사보도매체다. 지금은 꽤 유명해졌다(웃음). 국민 100만명 이상이 봤다고 한다. 현재 해직기자, 해직PD를 비롯해 스스로 그만둔 언론인 등 35명이 함께 하고 있다. 자본은 시민의 후원으로 한다. 현재 후원자만 3만5천명이고, 발전가능성이 큰 매체다. 뉴스타파는 속보보다 정확성에 방점을 둔다. 물론 성역이 없다. 후원회원은 한 달에 1만원부터이고, 일시후원도 가능하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했으니 ‘공포의 외인구단’이다(웃음). 지금까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세피난처’와 ‘국정원 간첩조작’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보도했다.”

-최종 복직판결이 나면 다시 친정인 MBC로 복귀할 건가.

“그때 가서 판단해 볼 일이다.”

-어렵고 힘든 길을 가고 있다.

“더 많이 배워야 할 것 같다. 요즘은 사진과 영상을 배우고 싶다. 사진은 현실을 알리고 소통하며 설득하는 한 방법이다. 쉬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다. 외국에선 언론인이 80~90세까지 한다. 미국 CBS방송의 ‘식스티 미니츠(60 Minutes)’는 한국의 ‘추적 60분’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등의 원조 시사TV프로그램이다. 거기에서 일하는 언론인 중엔 40대가 1명으로 가장 젊다. 대부분 50·60·70대다. CBS의 ‘앤디 루니’라는 언론인은 92세까지 일했다. 우리 언론사는 30대 중반만 되면 뒷방 노인이 된다.”

-존경하는 언론인이 있나.

“김중배 전 MBC사장과 얼마 전 타개한 성유보 선배, JTBC 손석희 선배 등이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